이제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은 더 이상 '토속적' 정취의 영화가 아닌 '예술 영화' 그 자체로 인정받는 나라가 됐다. 8일(현지시간) 폐막한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이 감독상, 문소리가 신인연기상 등 5개 부문상을 수상한 것은 단순히 임권택 감독의 칸 감독상 수상에 이은 또 하나의 낭보 그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수상이 100편의 영화를 통해 상업주의와 작가정신의 발전적인 절충을 모색해온 감독에 대한 존경 어린 공로상 성격에 해당한다면, 임감독에 비해 유럽 영화계에서 지명도가 낮은 이창동 감독의 수상은 작품에 대한 보다 엄격한 평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작가주의 영화는 이제 세계적 반열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사실 그간 외국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는 토속적인 색채가 짙은 것들이었다. '마부'(1961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씨받이'(87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화엄경'(94년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 및 특별상을 수상한 영화는 제작국가의 크레디트를 보지 않아도 한국의 냄새가 물씬한 영화들이었다.
보다 현대적인 소재를 다룬 작가주의 영화 역시 꾸준히 영화제의 문을 두드려왔지만 수년간 수상에 실패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99년 '거짓말'(감독 장선우), 2000, 2001년 '섬' '수취인 불명'(감독 김기덕)이 베니스 영화제에,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가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나 현지에서의 우호적인 분위기에도 불구,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었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에서는 어느 수상작에 못지 않았으나, 한국이라는 '백 그라운드'가 세계 예술 영화계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배경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의 수상 이후 한국의 예술 영화를 보는 시각은 분명 달라졌다는 것이 현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임권택, 이창동 감독의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는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됐다. 구로자와 아키라―이마무라 쇼헤이―기타노 다케시로 이어지는 일본의 작가주의 영화, 왕가위―차이밍량―프루트 챈으로 이어지는 홍콩 대만 영화, 트란안홍이 버티고 있는 베트남 영화에 이어 세계 영화 평론가들과 영화제는 아시아의 또 다른 예술 영화의 생산지로 한국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유수 영화제 역시 일종의 '유행'에 민감한 것이 현실이고 보면 그간 외국 영화제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온 김기덕, 홍상수, 송일곤 감독 등의 향후 수상 가능성도 한결 높아질 전망이다.
신예 감독들의 각축장인 업스트림(경쟁) 부문에서 한국 영화사 디지털 네가가 제작하고 장혁 조인성 주연에 홍콩 프루트 챈 감독이 연출을 맡은 다국적 영화 '화장실, 어디에요?'가 특별언급상을 받은 것 역시 새로운 예술 영화 제작의 패러다임을 만들려는 한국 영화계의 또 다른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칸과 베니스가 같은 해에 한국의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기고, 이외 많은 트로피를 '덤'으로 안겨 주는 것은 분명 한국 영화계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 문소리는 누구
문소리(28)는 첫번째 주연 영화로 베니스의 젊은 히로인이 된 '행운아'이다. 하지만 '오아시스'에서 그가 보인 '독한 연기'는 그의 수상이 결코 '행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8일 수상 직후 가진 현지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뇌성마비 장애인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 실제로 친한 친구가 됐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좋았던 시간"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힌 문소리는 '못난 공주 문소리'라고 사인을 할 정도로 6개월간의 촬영기간 동안 자신의 배역인 '한공주'가 되려 노력했다. 연기의 후유증으로 근육 통증과 몸의 균형이 틀어지는 이상이 생겨 출국 직전까지 치료를 받기도 했다.
문소리가 받은 상은 제 59회 베니스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올해 신설된 신인연기상. 우리말로 번역하면 '최고의 젊은 배우에게 주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Marcello Mastroianni Award For Best Young Actor Or Actress· 마스트로얀니는 '해바라기'의 주연 배우)의 첫 수상자가 된 문소리는 우리 대중에게는 아직은 낯선 연기자이다.
그의 장편 영화 출연 경력은 오디션을 통해 2000년 '박하사탕'에 캐스팅된 것이 전부다.영화에서 그녀는 주인공 영호(설경구)의 첫사랑인 순임 역할을 통해 80년대 불행한 삶을 산 한국의 여성을 연기했다. 두 번째 영화 '오아시스'에서도 그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자로 변신,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소박한 외모에 차분한 연기를 통해 그는 연기력 있는 배우로 인정 받았지만, '스타'가 되지는 못했다.
스타란 처음부터 그에게는 별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1993년 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문소리는 학생 운동에 적극 참여했었고, 우연히 본 최민식 신구 주연의 '에쿠우스'를 보고 연극에 푹 빠져 들었다. 이후 그는 '노랑꽃' 등 대학 연극에 출연하는 한편 연극배우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휴학을 하고 판소리를 배우는 등 배우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왔다. 96년 '교실 이데아'로 프로 연극에 발을 디뎠고, 99년 단편 영화 '블랙컷'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후 6편의 단편 영화에 출연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받은 상은 다 잊고, '오아시스'를 만들었던 자세로 임하겠다"는 문소리는 강수연(87년 베니스 영화제) 이후 15년만에 세계 3대 영화제에서의 여배우 수상을 알리며 우리 영화계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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