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인정하겠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 개싸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이전투구 판에선 못할 게 없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 심판도 없다. 심판 기능을 하는 구경꾼도 이미 패가 갈려 흥분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눈치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직 이기는 것만이 유일한 선(善)이요 정의(正義)다.왜 이렇게 되었는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주범의 이름을 지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쉽다는 뜻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원인 규명이 너무 단순화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져볼 만 하다.
한국인의 조급한 성격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에는 큰 장점이었지만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선 재앙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는 것도 정도 문제다. 우리의 경우엔 그게 너무 심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심층을 보자. 정치판의 이전투구는 대리 전쟁이다.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 그 배후가 누군가? 한국인의 머리와 가슴에 프로그래밍 된 '줄서기 문화'다. 공공 장소에서 서는 줄이 아니다. 권력과 금력의 알맹이, 아니 그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해 서는 줄이다.
한국 사회에선 그건 '투기'도 아니다. 정당한 '투자'로 간주된다. 속된 말로 누군가에게 '눈도장' 찍기 위해 이전투구 판에 뛰어들어 남다른 용맹을 과시하는 것도 합리적인 투자 행위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독재정권 시절에 민주화 투사로서 진보적인 면모를 보인 과거를 갖고 있다는 건 그들에게 결코 흉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에 수익률이 낮은 '투기'를 했던 것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하고 건전한 투자의 길로 돌아선 사람들이 아닌가.
일반 국민은 다를까? 조금은 다를 망정 크게 다르진 않다. 정치판 이전투구는 일반 국민의 이익 싸움이기도 하다. 대통령직에서부터 군수직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유권자는 '선' '정의' '원칙' '명분' 등과 같은 것에 따라 표를 던지는 게 아니다. '나의 이익'이 우선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군수가 되느냐에 따라 나와 내가 사는 지역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냐가 모든 선거를 결정한다. 물론 그 이익은 '선' '정의' '원칙' '명분' 등과는 무관한 것이다.
사정이 그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이익싸움을 모른 척하고 오직 대리전쟁을 치르는 정치판을 향해서만 비판을 집중시킨다. 부질없는 일이다. 유권자의 '이익싸움'이 불가능하게끔 행정, 특히 자원 배분 과정을 완전히 투명하게 만드는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한 정치판 이전투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군수가 되건 자원 배분 과정이 투명할 때 비로소 정치판 이전투구에 대해 이익 중심의 패거리 논리가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려 사안별로 정당한 응징을 가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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