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이 러시아에 빌려준 경협차관을 정부가 대신 지급하기로 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주 국내 채권은행단측과 국채발행을 통한 경협차관 대지급(代支給)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1991년 10개 시중은행이 정부 보증 아래 옛 소련에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19억5,000만달러 중 정부가 지급 보증한 15억9,000만달러를 국채 발행해 은행에 주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차관이 회수되는 대로 국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이다.그러나 지금까지 협상내용으로 볼 때 돈을 받아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 러시아 경협차관을 국민세금으로 물어주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년부터 공적자금 상환분을 국고에서 부담해야 하는 판에, 경협차관까지 떠맡게 되면 국민의 세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상환을 이유로 서민들의 비과세저축까지 폐지시킨 정부가 스스로 국채발행의 부담을 떠안은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 내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부는 98년 이후 러시아와 7차례 실무협상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상환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 현물상환 방식도 논의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도 언제 얼마를 갚겠다는 약속조차 받아내지 못한 채 7년여를 끌려 다닌 정부의 협상력 부재엔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냉전이 끝난 직후 옛 소련과 국교를 맺는 과정에서 차관 제공이 불가피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치자. 그러나 차관제공의 불가피성과 상환조건 및 방식, 상환 시기 등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리숙한 일처리로 국가적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국민의 혈세까지 날린 관계자들에게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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