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축구가 열린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한국팀 벤치. 전반이 끝나자 거스 히딩크 대한축구협회 기술고문은 벤치를 떠나 연인 엘리자베스가 앉은 귀빈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 전 관중에게 답례하는 등 한일월드컵의 감동을 재연할 태세를 갖추던 그는 45분 동안 박항서 감독과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박 감독도 후반 히딩크 고문이 자취를 감춘 뒤에야 터치 라인까지 나와 적극적인 작전지시를 내렸다.기술고문 자격으로 벤치에 앉은 히딩크가 후반 귀빈석으로 사라진 일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본인은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축구인들은 "두 사람 모두 작전지시를 내리기 껄끄러운 입장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반 단 한 개의 슛도 기록하지 못한 한국은 후반 10개의 슛을 퍼붓는 등 활발히 움직였다.
히딩크의 어퍼컷 골세리머니를 기대했던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지만 '당초 그를 벤치에 앉히는 건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직책과 역할이 모호하기 때문이었다.
'축구협회가 히딩크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까닭은 히딩크의 명성과 인기를 정몽준 회장의 대선 전략에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정치권과 축구계 안팎의 해석도 있다.
감독 복귀설과 관련, "2년 뒤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던 히딩크 고문은 8일 네덜란드로 떠났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그의 복귀를 전제로 대표팀 운영 계획을 세울 경우 향후 2년 동안 한국 성인대표팀은 지도자가 없거나 대행체제로 표류할 수 밖에 없다. 히딩크에 의지해 월드컵 4강 신화에 걸맞은 한국축구의 위상이 유지되길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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