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외국 여행의 기회가 드물었고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도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옛날 시골에서 서울 오던 것보다 쉬운 일이 되었고 방문객으로, 유학생으로, 또는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와서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수십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외국인과 직접 개인적으로 접촉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같이 어울리는 일은 드문 일인 듯 하다.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외국에 가서도 대체로 자기들끼리 집단으로 다니며 음식도 그 지방 토속음식보다는 우리나라 식당을 찾아 먹다 돌아온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도 직업 관계로 만나는 사람들 외에 보통의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그들이 사는 집을 방문하여 따뜻한 정취를 느껴 볼 기회는 아직도 극히 제한되어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여전히 손님을 매우 어려워하는 습관이 있고, 또 언어의 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정성이 있으면 언어소통 능력이 부족해도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인 대하기를 어려워 하는 것은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욕구와 호기심, 두려움 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국에 처음 갔을 때 그 쪽 사람의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고, 그들이 사는 집에 초대 받아 생활모습을 여러모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 얼마나 기쁘고 유익한 일이었던가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비슷한 친절을 베푸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수백 명의 외교관을 비롯하여 실업인, 학생, 문화계 종사자, 노동자 등이 수십만 명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비교적 풍족하고 유리한 처지에 있는 대사급 인사들 조차도 한국인의 가정에 초대 받는 일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건만 그런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고 지내다 떠난다. 하물며 유학생이나 노동자 같은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정부, 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있는 학자들조차도 받는 생활보조비의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여유 있게 여행할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하고 한국에서는 고생한 기억만 갖고 귀국하는 사례가 많다. 그들이 사실은 모두 자기 나라의 한국 전문가가 되고, 나아가 정부나 기업의 요직에 앉게 될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한국 생활의 아름답고 즐거운 면을 접할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하고 돌아가니 외국에 앉아서 한국에 관해 무언가를 알아보고 연구하겠다는 사람들의 처지는 더욱 답답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하고 있는 대학들의 '한국연구소'라는 곳을 가보아도 우리나라 그림이나 지도 한 장 제대로 된 것을 갖고 있지 못한 곳이 많으며, 그 밖에 한국을 대표할 만한 다른 물건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외국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그런 곳을 찾아가서 한국말을 공부하려는 학생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고 책이나 작은 기념품 한 가지라도 기증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그 나라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 각지에는 수 없이 많은 도서관, 박물관이 있지만 한국에 관한 책이나 물건은 전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가 세계 어느 지역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한 곳 만이라도 자매결연을 해서 그 흔한 책, 민속품, 의상 등을 몇 점만 공급해도 해가 거듭하면 그것들은 한국을 소개하는 귀중한 자료로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교류를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얻는 소득은 관광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외교나 문화교류는 외교부나 대기업, 또는 문화계 전문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세계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인 것이다.
우리가 2002 월드컵의 쾌거를 통해 세계에 보여 주었던 국민적 역량을 좀 더 다변화한 민간외교분야에서도 똑 같은 열정으로 지혜롭게 발휘할 수 있다면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대한민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훨씬 더 공고한 기반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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