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공연장박형준
고양이의 꼬리는 뭉툭하게 잘렸다
손톱 같다
초원의 사자처럼 밤공기를 밟을 때마다
치켜진 꼬리에서 적의가 흘러내린다
눈가엔 칼날이 긋고 간 흔적이 뚜렷하다
그는 더 이상 도둑괭이가 아니다
날쌔게 쓰레기통을 뒤지고 담장 너머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오랜 학대를 통해 진정한 사냥꾼이 되었다
그의 영역은 가등의 혀가 끈끈하게 떨어지는 야외공연장
난간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숨죽인 채
파랗게 타는 불꽃을 쏘아내고 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고양이는 밤공기를 가르며 허공에서 미끄러지는
고기 한 점을 물고 공연장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흥행사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는 듯이
연인들의 사랑스러운 비둘기를 물고
맹수의 포만한 몸짓으로 손톱 같은 꼬리를 흔들며
●시인의 말
노숙자와 연인이 뒤섞여 있는 대학로. 나는 밤 3시에 상처를 잊으려 습관적으로 비둘기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보았다. 맞설 수 없었다.
●약력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동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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