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비겨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요."7일 남북통일축구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난 뒤 한국대표팀의 박항서 감독은 이 같은 질문을 받고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러나 "민족화합을 위한 경기였지만 감독 데뷔전인 만큼 꼭 이기고 싶었다"는 말로 정치와 스포츠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12년 만에 다시 열린 남북친선경기는 통일의 명칭을 앞세운 것처럼 정치와 무관할 수 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비겨야 한다…'는 질문은 결국 정치논리가 승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깔고 있었던 셈이다.
경기 전 서울월드컵경기장 주변에서는 이념 갈등이 재연되는 듯 했다. 태극기 반입문제가 공론화한 탓인지 재향군인회원 500여명은 경기장주변에서 태극기 3만여장을 배포했다. 일부 단체는 '이 땅에 인공기를 게양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내걸다 경찰과 충돌했다.
그러나 6만4,000여 관중이 꽉 들어찬 스탠드의 분위기는 달랐다. 민족과 화합이 우선이었다. 이념은 남북선수들의 투지에 찬 몸놀림과 '아리랑' '필승 코리아'의 함성에 녹아버린 듯 했다. 한 관중은 "오늘은 한반도기가 더 어울릴 것 같다"며 태극기를 접어둔 채 한반도기를 흔들며 남북선수를 동시에 응원했다.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의 '대∼한민국' 응원구호도 전혀 편가르기로 들리지 않았다.
"남북축구 역시 지역· 연고간 대결인 프로축구와 다를 게 없지요. 분단전 경평축구도 결국 서울과 평양의 지역 대결이었잖아요"라고 말하는 관중도 있었다. 붉은악마가 북측 응원에 다소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일부 관중의 지적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해묵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남북 스포츠교류의 의미를 훼손하는 시대는 확실히 저물고 있다고 느꼈다.
이준택 체육부 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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