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지어진 임대아파트가 변질되고있다. 전세난을 틈타 원 계약자들이 많게는 수천만원까지의 웃돈을 받고 아파트를 넘기는 현상이 일부 지역에서 횡행하고있다. 올들어 재개발 및 재건축 붐 등으로 심각한 전세난을 겪는 광주지역이 특히 심하다. 광주의 사례를 통해 '임대아파트 프리미엄 전매'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해쳐본다.
"프리미엄 붙는 거 아시죠?"
7일 오후 광주 서구 풍암지구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 이모(51)씨는 "임대아파트 매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뜸 이같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묻자 "요즘 임대 아파트에 입주한 무주택자들의 프리미엄 욕심은 말도 못한다. 웃돈을 주지 않고는 집 얻을 생각을 하지 마라"고 손사래 쳤다.
최근 광주지역 임대 아파트 시장에 프리미엄 뒷거래가 판을 치고 있다. 수도권처럼 투기꾼 등의 가수요가 없는데도 웃돈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광주에서는 금년초부터 전세난이 심각해지자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수요가 임대아파트에까지 몰리자 아파트 원 계약자들은 이주가 급한 실수요자를 상대로 임대 보증금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의 웃돈을 요구하고 있다.
신흥 택지지구인 서구 풍암지구 모아파트(33평형)는 임대 보증금이 5,200만원이지만 1,5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실제로는 6,700만원에 세입자 명의변경이 이뤄지고 있다. B, D아파트 32평형도 1,000만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인근 금호와 북구 용봉, 두암, 일곡지구 등도 마찬가지. 24평형의 경우 300만원, 32평형은 500만∼700만원이 프리미엄 '공정가격'으로 굳어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웃돈 없이 매물을 내놓았던 입주자들도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심리로 물건을 거둬들인 뒤 웃돈을 붙여 다시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C공인중개사 정모(40)씨는 "광주에서 임대아파트를 웃돈없이 내놓은 입주자들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며 "매물을 내놓은 입주자들 사이에 '이번 기회에 한 몫 잡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프리미엄은 계속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부동산업자들은 구매자측의 '경매식 아파트 구하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내 집 마련이 급했던 무주택 서민들은 "(임대아파트를) 제발 나에게 넘겨달라"며 스스로 프리미엄을 경쟁적으로 올렸고, 이것이 '웃돈없이는 명의변경 없다'는 식의 거래를 관행화시켰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프리미엄이 실 수요자간 뒷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 입주한 세입자가 임대기간 만료 후 분양받더라도 프리미엄을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또 웃돈 거래는 임대 아파트 분양 전환시 아파트 값 상승 뿐 아니라 인근 아파트의 전세가격을 끌어올려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의 기회는 더욱 힘들어 질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임대아파트의 웃돈 거래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운암지구 아파트 재건축으로 전세수요가 크게 늘어난 반면 향후 1∼2년간 신규 아파트 공급물량은 없어 가뜩이나 모자라는 공급을 더욱 축소시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때문이다.
무주택 영세민들의 집없는 설움을 덜어주기 위한 임대아파트가 돈벌이와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해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대한부동산컨설팅 최중림(33)대표는 "임대아파트 웃돈 거래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번지면서 부동산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엄격한 명의변경 제한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무주택 서민용 주택이 돈벌이 변질"
'제발 집을 구할 수 있어야 할텐데.'
내달 13일 결혼하는 신승현(32·회사원·광주 북구 임동)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결혼이 코 앞에 닥쳤지만 신혼집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세는 물론 임대아파트를 찾아 발품을 판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교통이 편리하고 괜찮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프리미엄이 붙어 있어 매물을 내놓은 원 계약자에게 말도 못 붙여 보고 매번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신씨는 "임대아파트를 찾아 간 곳 마다 1,000만원의 웃돈을 요구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급한 마음에 분통이 터지더라도 웃돈을 주고 아파트를 얻고 싶었지만 결혼비용이 빠듯해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 5,000만원 하는 다세대 주택이나 원룸으로 입주해야 할 지, 아니면 본가에 들어가 살아야 할 지 고민이다.
서구 풍암동 신암마을 32평에 살고 있는 양모(35)씨도 최근 아파트를 구하느라 700만원의 웃돈을 준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양씨는 7월초 회사 내 인사발령으로 집을 전남 화순에서 광주로 옮기게 되면서 부동산에 선금까지 주고 임대 아파트를 구했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물량이 없거나 프리미엄이 붙지 않은 아파트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달 25일 1,000만원의 웃돈을 요구하는 원 계약자와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300만원을 깎은 뒤 겨우 입주했다.
양씨는 "무주택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임대 아파트 입주자들이 오히려 이를 악용해 돈벌이에 나서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꼬집었다.
■올 봄 이사비용 수준 프리미엄 "올리자" 풍조에 10배뛰어
"생활 정보지 탓에 프리미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 광주지부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광주지역 임대아파트 시장의 프리미엄은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웃돈 뒷거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올 봄 이사철 때만 해도 프리미엄은 아파트 평형에 관계없이 매물을 내놓은 원 계약자의 이사비용을 입주 예정자가 대신 부담해주는 정도인 100만∼200만원 수준이었던 게 사실.
그러나 현재 풍암동 S아파트(32평)의 경우 프리미엄이 1,500만원으로 10배 가까이 뛰었다. 프리미엄의 경우 통상 아파트 분양이나 이사철 등 수요가 몰리는 '한 때'가 지나면 가격이 떨어지거나 사라지는 게 보통이지만 광주의 경우 수개월째 오히려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프리미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파트 입주물량이 부족한 게 1차 원인이지만, 생활정보지가 한몫 톡톡히 거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생활정보지가 난립하면서 이를 통한 실수요자간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공인중개사들의 가격 조정역할이 사라져 프리미엄이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양을 앞둔 일부 인기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이고, 거래가 드문 상태에서도 1건만 성사돼면 그 금액이 공식가격으로 굳어지고 있다.
풍암동 J부동산 관계자는 "수요가 몰리다 보니 입주자들이 웃돈을 요구해 놓고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고 있다"며 "생활정보지를 통해 한건이 성사되면 그 금액이 정상가격이 되고 거기서 다시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입주자들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를 내놓고 "프리미엄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프리미엄 '관리'에 나서기도 한다. 금호동 M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매물을 내놓은 사람들 중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얼마까지 받아달라'는 등의 웃돈 인상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며 "'다른 아파트는 얼마를 받았으니 우리 아파트는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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