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낮 강원 강릉시청에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진 구호품을 잔뜩 적재한 대형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도착하고 있었고, 군용과 소방헬기들도 연신 굉음을 내며 구호품을 싣고 오르내렸다. 시청 마당의 구호물품 배급소에는 미처 분배를 못한 생수, 쌀, 라면 등의 구호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같은 시각 동해시청 마당 한켠에는 강릉과 비교도 안되는 빈약한 물품이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이곳 시청 관계자는 "생필품을 지원해 달라고 아우성인데 들어오는 물품이 워낙 적어 어쩔 도리가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구호물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뜩이나 상처입은 수재민들의 마음을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집중 부각된 곳으로 구호품이 몰리는데다, 아직 배급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별로 구호품 공급 큰 차이
강릉시의 경우 이날까지 쌀이 1만4,028 포대가 구호품으로 들어왔지만 삼척시의 경우 겨우 3,818 포대만 들어오는 등 식품, 의류 등의 구호품 물량이 도시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3,000여 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은 동해시 주민 김장수(金場秀·47·부곡동)씨는 "이틀 전에야 겨우 라면 몇 박스와 부탄가스를 받았다"며 "마치 차별받는 서자(庶子)같은 느낌이 들어 서럽다"고 말했다. 도시전체가 고립됐던 인근 양양, 정선의 수재민들도 "언론에 집중보도된 곳에만 구호품이 몰리는 것 같다"며 섭섭해 했다.
▶한 동네에 부자 수재민, 가난한 수재민
이런 현상은 도시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강릉시 외곽의 옥계, 강동면 주민들은 "다른지역 주민들이 우릴 부러워하는 건 뭘 모르기 때문"이라며 "강릉도 중심가 동네만 구호품과 자원봉사자들이 넘쳐나지 우리는 거의 혜택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자 수재민과 가난한 수재민으로 계층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까지 자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호물품을 몇 트럭씩 싣고 달려온 기업들이 홍보효과가 높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집중 배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모(37·포남동)씨는 "길 건너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데도 기업들이 그쪽에만 앞 다퉈 구호품을 쏟아붓고 있다"며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물만 먹고 살순 없잖아요
구호물품의 편중 현상도 문제다. 8일 강릉시내 동사무소, 초등학교, 마을회관 앞에는 생수가 가득 쌓여있으나 더 이상 이를 챙겨가는 수재민들은 보기 힘들다. "날이 추워져 마실물보다 따뜻한 담요 하나, 겨울 옷이 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흐레째 경포중학교에 머물고 있는 박복례(朴福禮·76) 할머니는 "밤이면 추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덮을 거라도 넉넉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소연했다.
삼척시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도 "이제는 생수보다 두터운 옷, 이불, 밑반찬, 속옷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미리 어떤 구호물품이 필요한 지 재해대책본부 상황실로 문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릉=최기수기자 mounta@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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