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식물을 보러 떠나는 길은 한 끼쯤 굶어도 걱정이 별로 없습니다. 시골길을 가다보면 어김없이 옥수수를 찌고 있는 솥을 만나게 되고 이를 몇 개 사가지고 입에 물고서 노랫말처럼 쫀득한 옥수수 알을 남겨가며 하모니카라도 불 듯이 재미나게 먹는 일도 하나의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오늘은 그 옥수수의 꽃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옥수수의 암꽃과 수꽃은 한 그루에서 따로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옥수수의 암꽃과 수꽃은 소나무와는 달리 수꽃이 줄기의 가장 위쪽에 있습니다. 옥수수 줄기 끝에 삼각형으로 늘어지듯 달리는 것이 바로 수꽃입니다.
키가 아주 큰 소나무의 수꽃들은 자가수분, 즉 한그루의 암꽃과 꽃가루가 만나는 일을 막기 위해 암꽃보다 위치를 낮추었지만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여러 그루가 밀집된 상태에서 키워지는 옥수수의 수꽃이 아래쪽에 달려있다면 꽃가루를 날려보내는데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되겠지요.
그래서 옥수수는 수꽃을 빽빽한 줄기 위쪽에 시원하고 자유롭게 달고 있는 대신 자가수분을 막기 위한 시간차 방법을 씁니다. 수꽃이 활짝 피어 꽃가루를 날리는 시간보다 약 이틀쯤 후에 암꽃이 성숙하게 됩니다. 한 그루에서 꽃가루를 받아 결실하는 일은 피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그러면 암꽃은 어디에 달릴까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데, 우리가 먹는 옥수수 알곡 있는 부분이 열매이니 바로 암꽃이며 줄기 중간 중간 잎사이에 달려있습니다. 꽃잎은 없지만 씨방들이 줄줄이 포에 싸여 달려있는 모양입니다. 잎 같은 커다란 포에 싸여 있어 그 속에서 꽃으로 피었다가 꽃가루받이에 성공하면 열매로 익어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길게 나와 늘어진 수염도 궁금하지요. 옥수수 수염은 바로 암술대입니다. 수염을 한 가닥 한 가닥 잡아서 따라 들어가 보면 본래는 씨방이었던 옥수수 알 하나 하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꽃들이 주머니 같은 포에 싸여 있으니 꽃가루받이를 하려면 이렇게 길게 밖으로 나와있어야 겠지요. 이 암술대, 즉 수염은 색깔이 변합니다. 처음엔 흰 빛깔이다가 수분이 일어나 열매로 익게 되면 자주빛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옥수수를 딸 때 충분히 자주빛으로 변한 수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직은 덜 익은 것이니까 좀더 기다려야 합니다.
옥수수는 꽃이 피기 전 쓰러져 기울게 되더라도 혼자 일어서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뿌리가 있던 곳에서 세 마디쯤 위쪽에서 줄기를 뺑 둘러서 굵은 뿌리가 나오는데 기울어져 있는 부분의 뿌리가 굵고 길게 나와 뻗으면서 줄기를 받쳐 스스로를 일으켜 세웁니다.
북위 58도나 되는 먼 곳, 너무 멀어 문명과 상관없는 곳으로 식물조사를 다녀오고 나니 온 나라가 태풍의 피해로 큰 걱정입니다. 수해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들이 쓰러져 버린 자신을 일으키는 옥수수의 의지처럼 실의를 떨치시길 바랍니다. 빠른 복구를 위해 온 몸과 마음으로 성원을 보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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