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3월초 대학가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반대데모로 술렁댔다. 법대 신입생인 나도 입신출세를 위해 고시공부에 몰두하느냐, 사회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를 놓고 많은 갈등을 겪었다.그러다 그 해 가을 독후감과제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도덕재무장(MRA)운동을 이끈 사회운동가 정 준씨가 지은 필리핀 대통령 막사이사이의 전기인 '라몬 막사이사이전'(성문학사 발행)을 우연히 접했다. 그날 저녁 책을 두 번이나 읽고 고민이 모두 풀어지는 듯한 후련함을 느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막사이사이는 아버지가 교사인 가난하고 소박한 가정 출신이었다. 어릴 때는 대장간 일, 숯굽는 일 등을 하면서 아버지를 열심히 도왔다. 1944년 초 일본군이 그가 사는 잠발스지방을 공격하자 유격대를 지휘했다. 그의 주요 임무는 항일유격대원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는 잠발스지방을 탈환하는데 많은 공을 쌓았다. 1945년 1월 전쟁이 끝나자 유격대장으로서의 공헌도, 지도자로서의 정직성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잠발스지방의 군정장관에 임명됐다. 이후 그는 필리핀 국방장관, 국회의원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정적의 공격을 받았지만, 정직한 인품과 소신은 잃지 않았다. 매사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정치가는 모두 거짓말을 잘해야 성공하는 것으로 알고 아예 정치와 사회참여에 싫증을 느끼던 나는 그 책을 읽고,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되면 국가에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후 나는 사회문제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했다.
내가 사회문제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태도로 바라보게 된 것도 이 책의 영향이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치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면서 분명한 나의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었다. 책을 읽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도 정직성과 성실성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기억에 새롭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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