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력이 크게 떨어져 집에서 누워 지내는 그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벅찬 일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 해서 분위기 있는 단어로 들릴지도 모르는 우울증은 사실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는 고통으로 인해 파멸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1985년 10월,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스타이런(77)은 불현듯 자신이 우울증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실비아 플라스, 어네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다.
시노 델 듀카 상을 받기 위해 파리로 온 그는 시상식장에서 불쑥 "오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수상자로 선정한 프랑스 학술원 회원 12명이 동석하는 오찬에 가지 않겠다니, 어처구니없는 통고였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우울증이 얼마나 악랄하고 음흉한 단계에 다다랐는지를 깨달았다. 건강했다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실수였다.
'보이는 어둠'(문학동네 발행)은 윌리엄 스타이런의 우울증에 관한 보고서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는 영화 '소피의 선택'의 원작자로 잘 알려졌다.
그가 60세의 나이에 겪었던 우울증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작가라면 한번쯤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법하다. 이 질병은 그러나 그것을 앓는 사람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씌운다.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동정심과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 기초해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이런은 이 질병과 싸워야 했다. 약물을 복용했고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았다. 병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수면제를 먹어야 잘 수 있었고, 그나마 두서너 시간뿐이었다. 불면의 마비 상태. 평온하게 잠들면 만나지 않을 어둠을 그는 날마다 목도해야 했다. 자살의 유혹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와 친분을 나눴던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도, 그의 작품에 영감을 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자살 혹은 자살로 의심할 만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건강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질병의 고통을 막연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울증이 얼마나 처참하게 정신을 부수고 인간을 광기로 몰아가는지 한순간 와 닿는 묘사가 있다. 스타이런은 햇볕 좋은 날 숲속을 산책하다가 거위떼가 끼룩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작가를 사로잡았을 순수한 소리와 풍경. 그런데 스타이런의 마음은 얼어붙었고 심장에 대못이 박히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는 무력하게 벌벌 떨면서 망연자실 서 있었다. 보들레르의 시 구절이 그의 의식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광기의 날개가 펄럭이는 걸 느꼈다."
그리고 겨울 어느날 죽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자살하려던 그를 구한 것은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였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를 듣자 추억이 살아났다. 뛰어다니던 아이들, 축제와 사랑과 작업, 쾌활한 소란, 오랫동안 함께 한 고양이와 개. 모든 것이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값진 것이었다. "고의적으로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런 추억들은 내가 상처입힐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었다." 스타이런은 다음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정신을 추슬러 질병과 맞서 싸웠고, 우울증이라는 악마를 이겨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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