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 져본 일 없고, 노름판 딜러, 땡처리 중개업 등 돈 되는 일은 물불 가리지 않는다. 이 짧은 인물묘사로 떠올릴 수 있는 얼굴은? 불량기가 흐르고 건들건들한 그저 그렇고 그런 백수건달? SBS TV '정'(극본 장영철, 연출 정세호)으로 2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김석훈(30)은 그러나 그 뻔한 이미지와는 다른 인물을 만들어냈다. "철수는 직업이 주는 이미지가 없다. 하지만 실업자라고 꼭 껄렁껄렁한 것만은 아니다. 철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그것도 한방에. 그리고 삭이지 못한 한도 많고, 인생이 좀 꼬이기도 하고."
김석훈은 "처음부터 철수를 건달로 설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생각보다 싸우고 맞고 터지는 장면이 많다. 얼굴에 멍이 가실 날이 없다. "대본을 수정하면서 싸우는 장면이 더 많아지는데 정세호 PD는 '액션도 잘하는데 뭘 투정이냐'는 식이다. 죽을 지경이다"며 투정도 부려본다. "누구나 힘든 것 싫어하지 않느냐.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자꾸만 액션 연기에 엮인다. 정두홍 무술감독도 칭찬하는데 뭐 그럴 정도는 아니고, 자꾸 하다 보니 남들보다 힘들지 않게 하는 기술은 습득했다."
1998년 국립극단 단원이던 김석훈은 정세호 PD의 눈에 띄어 드라마 '홍길동'으로 TV 드라마에 데뷔한 후 '토마토' '경찰특공대' 와 영화 '단적비연수' '북경반점'에 출연했다. 항상 반듯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김석훈은 '단정하다' '모범생 같다' '도회적이다'며 추켜세우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항상 깨끗하게 다린 양복을 입고 다니거나 말을 깔끔하게 하는 성격은 아니다. 반대로 껄렁껄렁하지도 않다. 도회적이라고 하는데, 압구정동 같은 데보다는 시골이 훨씬 좋다."
'정'을 통해서 김석훈은 자신의 모습을 더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단 철수처럼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는 않다.
'홍길동' '경찰특공대'에 이어 정 PD가 연출하는 드라마에만 세번째 출연. 드라마 출연 때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언급되는데 식상한 듯하다.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작업할 뿐"이라며 "'홍길동'으로 인생이 바뀌었으니 늘 고마운 마음은 있다. 하지만 정 PD가 내가 좋다고 해서 쓴 거니까 특별히 빚을 졌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TV는 오랜만이지만 지난 1년간 김석훈은 꽤 바빴다. 올 8월초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튜브'의 촬영을 마쳤고, 지난해 9월에는 연극 '햄릿'에 출연했다. 코미디영화 '귀여워'도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 '정'도 하루 3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강행군이다. "'튜브' 촬영이 예정보다 늦춰져 좀 놀았다. 바쁜 걸 싫어하고, 노는 걸 좋아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점은 몰아서 일하고 얼마간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과 '귀여워' 이후의 계획은 아직 잡지 않았다.
TV 드라마보다 연극이나 영화가 배우로서 역량을 보여주기에 좋은 매체라는 것을 그도 안다. 하지만 "연기자라면 대중이 원할 때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드라마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차에 콩쥐팥쥐 스타일의 트렌디 드라마가 아닌 정통드라마를 한다기에 '정'의 출연을 결심했다.
연극무대에 대한 갈증도 여전하다. 국립극단은 지난해 그만두었다. "국립극단에 있으면 1년에 한 두편은 연극무대에 설 수 있을 텐데, 잘렸다. 공무원처럼 출퇴근해야 하는데 TV와 영화 하느라고 제대로 못했다." 대학(중앙대 연극학과) 졸업하자마자 국립극단에 입단했고 드라마 데뷔작으로 스타의 대열에 오른 행운아 김석훈. 하지만 월급 몇 십만원 받으면서도 행복을 느끼던 때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자꾸 부인하는데도 소탈해 보인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