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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영광과 오욕의 불가사의

입력
2002.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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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캄보디아 여행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말밖에 달리 그 감동을 표현할 수가 없다. 휴가를 이용한 늦여름 여행의 동기는 앙코르와트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유네스코가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았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와 그리스 석조건물 같은 것들을 대충 둘러본 터여서, 동양과 서양 석조건축의 차이를 찾아보고 싶기도 하였다.4박 5일 일정 가운데 이틀간 둘러본 앙코르 왕국 유적은 이제 좀 살만해진 나라 관광객의 교만을 압도했다. 12세기 전반 37년동안 건설되었다는 힌두교 사원 앙코르와트는 우선 그 규모부터 상상을 절하였다. 사원은 190m 폭의 사각형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해자의 크기는 동서 1,500m에 남북이 1,300m. 그렇게 구획된 땅에 동서 1,000m 남북 815m 길이의 석벽을 높이 쌓고, 그 안에 3중 회랑과 본전을 배치한 구조는 거대한 피라미드로 보였다. 제3회랑 위에 떠받들어진 본전은 5개의 석탑을 이고 있는 형상인데, 제일 높은 탑이 높이 65m다. 보조 자재없이 그 거대한 돌집을 짓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크기에 압도당한 가슴은 그 화려한 부조(浮彫)의 예술성에 결정타를 맞는다. 길이 760m의 제1회랑 벽면이나, 돌산같은 건축물 외벽과 기둥 천정 등에 새겨진 그림에는 크메르 왕국의 역사와 전설, 왕의 위업과 서민생활을 포함한 그 시대 생활상이 장편 서사시처럼 묘사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왜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전장으로 행군하면서 뒤를 돌아보며 장난치는 병사나, 닭싸움 도박에 정신이 팔린 서민들 표정에는 오늘의 일과 같은 생생한 현실감이 넘쳐난다. 암질이 무른 사암이라 하지만 어떻게 그리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훌륭한 석조 건축물이 앙코르와트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에만 그런 유물이 100개 정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앙코르 톰(도성)은 한 변의 길이가 3,000m다. 그 안에는 왕궁 유적을 비롯해 사원 제단 사열대 등 수많은 석조유물이 남아있다. 특히 바이욘 사원 50개 석탑을 장식한 4면 관음상의 미소는 남방 불교미술의 정수(精髓)라 할 만하다. 그러나 거기에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과 한숨이 배어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놀라운 건축예술 작품들이 500년 동안이나 세상과 유리되어 있었던 것도 불가사의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불가사의는 그런 민족이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육극인 '킬링 필드'의 주인공들이란 사실이다. 마침 앙코르와트 가까운 곳에 킬링 필드의 현장이 있어 잠시 둘러 보았다.

시엠립 시내에 있는 와트마이 사원에는 이상적인 '농민천국'을 꿈꾸던 폴 포트의 살육 광란기에 희생된 1,000여명의 유골이 유리로 칸을 막은 제단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손상된 두개골과 사지의 골편은 크메르 루주의 잔혹성을 증거하고 있다. 폴 포트의 어린 농민전사들은 농민천국 건설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되는 주민들을 붙잡아 조사하고 심사하는 과정에서 마치 생선 다루듯 사람들을 죽였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이 200만이라고도 하고, 300만이란 설도 있다. 구 정권의 군인과 경찰을 죽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자. 그러나 빈농을 제외한 모든 계층을 모조리 처단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영어를 말할 줄 안다는 이유로, 만년필이나 볼펜을 가졌다는 이유로, 하물며 안경을 꼈다는 이유로 대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래서 오늘의 캄보디아는 문맹률 90%의 국가가 되었다.

이 영광과 오욕의 불가사의는 절대권력자 한 사람에 의해 연출되었다. 인류사에 그런 일은 흔하지만, 대명천지가 되었다고 안심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권력에 눈먼 진흙탕 속 싸움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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