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4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통해 서울 강남 못지 않은 수준의 '추가 신도시 개발'을 공식화하면서 신도시 후보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신도시 위치나 규모와 관련, 아직 아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 그러나 대한주택공사나 한국토지공사 등이 이미 1980대말 5대 신도시를 계획할 때부터 수도권의 개발 가능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축적해 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도시 개발 배경 및 후보지를 점검해 본다.◆개발배경
정부는 고급거주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입지여건과 개발 잠재력을 갖춘 지역을 선정, 2∼3개의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은 '제2의 강남' 건설로 인식되고 있다. 집값 급등의 진원지가 강남이었고 이에 대한 처방 과정에서 신도시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넓게 본다면 이번 추가 신도시 개발은 일산, 분당 등 5대 신도시 개발 이후 약 10여년 만에 그에 맞먹는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간 수십만평 규모의 택지개발지구나 미니 신도시가 산발적으로 추진됐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수도권 주택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오히려 각 지자체에 의한 체계적이지 못한 개발이 용인 등 일부에서 난(亂)개발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점에서 학계에서는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 필요성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5대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은 이후 대규모 신도시 개발에 엄두를 못냈던 정부가 최근의 주택시장 불안상황을 기회로 신도시를 다시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도시 후보지
신도시 개발 예정지와 관련, 정부는 "아직은 백지상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정부 일각 혹은 관련업계 및 전문가 집단을 통해 유력한 후보지 6∼7곳이 거론되고 있는 상태. 정부가 확정하게 될 2∼3곳의 추가 신도시도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력한 곳으로 거론되는 지역은 김포매립지, 성남 서울공항, 고양시 일대 등 세 곳.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이 조성한 487만평의 농지. 동아건설의 부도로 99년 농업기반공사가 이를 매입, 현재 용도변경을 통해 개발계획을 수립 중이다. 고급 신도시라는 기본 그림에 맞출 경우, 김포매립지는 물론 배후지역인 김포시 양촌면·대곶면, 인천 서구 일부지역까지 포함해 많게는 1,000여만평까지 신도시에 포함될 수 있다. 이 지역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천 신공항 등과 연결되는 수도권 서부지역 개발축 상에 위치해 훌륭한 입지 여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정석희 상임이사는 "부지가 넓고 교통도 편리하며 공항하고도 가까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남 서울공항 부지(150만평)도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신도시 후보로 떠올랐다. 인천공항 개항으로 수요가 많이 줄어든 김포공항으로 서울공항의 기능을 이전하고 그 부지에 신도시를 만들자는 것. 수도권에 있는 유일한 군(軍) 전용공항이어서 국방부의 반대가 걸림돌이지만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 전격 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성남공항은 규모는 작지만 서울 근접성 등 입지여건으로 보자면 판교보다 훌륭해 강남 수요를 끌어들이기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강남 대체지로 또 거론되는 곳은 택지개발지구로 예정된 경기 판교나 과천 지역이다. 서울에 바로 접해 있고 이미 택지개발지구로 예정돼 있어 강남과 유사한 고급 주거지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곳으로 평가된다.
고양시 일대에서는 덕양구와 인접한 서울 수색동을 포함한 지역이 거론된다. 일산신도시 건설 이후 뚜렷한 개발계획 없이 고양 지역에 소규모 주거단지가 앞다퉈 들어섬에 따라 발생한 교통문제 등을 고급 신도시로 묶어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고양 방면이라면 일산신도시 북측을 포함, 그 위쪽의 파주 운정 등을 아우르는 지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청계산을 중심으로 4개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방안도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현규 경기부지사가 내놓은 안으로 서울 외곽 동·서·남·북 4개 축에 자족기능을 갖춘 최대 1억4,000만평 규모의 택지를 개발하되 우선 2020년까지 경기 의왕 청계산 주변 4곳에 1,470만평 규모 신도시를 건설하는 이른바 '청계산밸리 프로젝트'다. 경기도는 이 지역을 판교신도시와 연계해 '제2의 강남'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대상 지역이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있어 환경단체나 환경부가 반대하고 있는데다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아 실현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밖에 서울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발지인 강서구 마곡지구도 거론되고 있다. 규모(121만평)가 크지 않은 것이 단점이지만 인근에 있는 김포매립지나 김포공항 등과 연계해 개발하면 서울의 균형적인 발전 측면에서도 이상적인 강남 대체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가 도시기본계획으로 2011년까지 개발유보지로 남겨두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조기 개발 가능성은 크지 않은 편이다. 이보다 조금 더 서울에서 멀어지면 경부고속철도 광명역세권, 화성 일대 등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역들은 수도권 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에서 제외돼 있는 등 개발에 따른 부담이 적다는 점이 장점이다. /김혁기자 hyukk@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특별기고 / "신도시개발 패러다임 바꿔라"
신도시 개발 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특별히 '강남수준의 신도시'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세간에서는 벌써부터 신도시 개발 후보지가 어디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좀 다르다. 신도시라는 것이 물론 입지가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결국은 입지보다는 개발의 내용과 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신도시처럼 베드타운형의 신도시일 경우 서울에서 보다 근접한 위치가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전체의 균형적인 개발을 위해서라면 서울에서 다소 멀더라도 새로운 기반시설과 자족기능을 갖춰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과연 신도시를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느냐는 것이다. 일단 지난 신도시 개발의 경험을 되새겨 보면 도로는 물론 신도시 내·외부의 각종 기반시설에 대한 확충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92년 신도시 입주 초기, 지하철 개통이 늦어져 서울로 출퇴근에 큰 애로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가 제 때 개교하지 못한 일, 주변에 상가입주가 늦어져 일상적인 주거에 불편을 주었던 일들까지 입주자들의 애로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최소한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다음은 어떤 주택으로 신도시를 채우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고층 아파트 일색이 신도시의 일관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개발하는 신도시는 입주 시기를 고려하면 향후 10년 이후의 주택수요와 성향을 고려해야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획일적인 아파트를 선호할까? 주거지 배치도 고려해야 한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주거지는 소득계층별로 세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책입안자의 입장에서 저·중·고 밀도를 적절히 나누고 소득계층도 골고루 포함시키는 그런 개발계획은 이제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계층의 사람들, 어떤 주택수요를 가진 사람들을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신도시가 풀어야 할 숙제는 입지선정보다 지금의 신도시 개발방식에 대한 각종 제도와 법규정을 손보는 일이다. 현재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과거 대규모의 표준화된 주택공급에 적합한 기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택수요가 다양해진 만큼 이러한 획일적인 기준들의 수정이 필요하다. 또한 주택의 외형이나 단지구성도 다양한 설계공모를 통해 민간의 창의를 마음껏 담아낼 수 있어야겠다. 신도시의 매력은 바로 백지위에 무엇이든지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곡한 바램은 이번 신도시 개발은 제발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추진되지 않아야겠다. 정말 살기 좋은, 아니 가서 살고 싶은 신도시가 건설된다면 기꺼이 기다려 줄 수요자들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김현아(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 도시계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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