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의 조합에 의해 인생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서로 다른 것들 중 어떤 비율의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황금분할의 아름다운 선택이 되기도 하고 균형이 깨진 불안정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선택이란 거꾸로 이야기해서 선택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선택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한다. 또한 선택을 한 후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도 가져야겠고, 저것도 가져야겠다는 것은 미련을 떠나서 인간의 욕심이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에 이르는 법이다. 인간의 욕심은 자기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하고야 만다.
먼저 총리인사청문회를 보자. 우리는 청문회 과정을 통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얻으려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배웠다.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은 재물 욕심을 삼가야 한다. 부와 권력을 동시에 가지려는 사람은 교도소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은 명예를 그르치지 않을만큼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로 가는 길이다. 이 사회에는 부와 권력과 명예, 이 세가지 중 한가지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중 한가지만을 가진 것으로도 그 은혜가 족하다.
두차례나 한반도를 휩쓸고 간 수재 또한 우리에게 인간의 욕심과 선택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지역 주민이 주인이 되도록 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지방자치제가 내 지역 주민만 잘 살면된다는 지역이기주의에 빠지면서 산허리까지 난개발되고 강에는 교각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어, 결국 숨을 곳 없고 갈 길이 막힌 빗물은 여지없이 인간이 사는 마을을 덮치고야 말았다. 안전과 환경은 개발을 어느 정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당 민주화의 문제도 그렇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고 당내 권력을 분산하려면 1인 지배 정당의 효율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권력을 분산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관성없는 주문이다. 예를 들어 발전산업 민영화 문제를 보자. 일단 전기를 사기업에 맡기면 전력수급이나 가격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전기의 공공성이 크다면 시장의 효율성은 어느 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나라살림도 마찬가지다. 세금도 적게 내고 사회보장도 잘 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준다는 것은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기로 약속했으면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나누는 것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선택을 회피하지 않고, 또 선택에 대해 온전히 책임질 줄 아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의 기본 덕목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는 핑계를 대면서 뒤로 빠지는 것은 마치 자신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점수가 나쁜 학생들의 시험지를 들고 점수가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며 시험지를 내팽개치는 교수만큼이나 무책임하다. 시험점수가 나쁘다고 하여 30점, 50점, 70점의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F학점을 주는 것 또한 차선과 차악과 최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별력없는 선택이다.
일단 선택을 하였으면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 주인된 자세다.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해서 선택하였으면 그 선택에 따른 불이익도 함께 안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성을 보고 남편을 선택했으면 요령을 피워 돈 많이 벌어오는 것을 요구하기보다 맞벌이로 부족한 수입을 채우는 씩씩한 아내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당당한 것이 보기 좋아서 아내를 선택했으면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자기를 맞이해 주기를 기대하기보다 가사를 확실하게 분담하는 자상한 남편이 되어야 한다. 선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박주현 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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