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 한 마리에 3만원이라고? 김수현의 주말드라마 ‘내 사랑 누굴까’를 보다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갓 시집온 이승연이 굴비 네 마리를 한꺼번에 구워냈다가 시할머니에게 혼쭐이 나자 동서 명세빈이 자기 남편에게 전말을 고한다. 남편이 대체 굴비 한 마리가 얼마냐고 묻자 ‘한 마리에 3만원은 될 껄’이라고 대답한다. 헉!!3만원이면 동네 백화점에 가서 작은 굴비 서른 마리는 너끈히 살 수 있는 가격이다. 홈쇼핑에선 5만원 못 되는 돈으로 40마리에 20마리를 얹어 주기까지 한다. 이 굴비 에피소드는 시할머니의 근검 절약 생활신조를 빌어 젊은 층의 소비 풍조를 꼬집어 보자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집에서 구워먹는 굴비는 한 마리 3만원 짜리 란다. 3만원 짜리 굴비를 제 돈 내고 사먹는 집이 대한민국에 대체 몇이나 될까.
하긴 강남 요지로 보이는 곳에 근사한 빌딩을 갖고 있는 집이니 그렇게 먹을 수도 있다고 하면 할말 없다. 말 나온 김에 트집을 잡자면 이승연의 친정 어머니인 유명 디자이너와 그 친구 레스토랑 여주인은 만나기만 하면 이승연 시댁의 ‘기우는 형편’을 언급한다.
그들에겐 자기 할아버지 빌딩에 멀쩡한 동물병원 개업 중인 수의사가 어려운 형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서민 시청자들에겐 속 뒤집어지는 얘기다.
요즘 시청율 1위라는 ‘인어 아가씨’를 볼 때에도 작가의 현실 감각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속출한다. 문화부 여기자 은예영은 신문사 사장 아들인 사회부 기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미련없이 사표를 던진다.
그리곤 하는 말이 기자가 된 것도 ‘오빠의 직업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였단다.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인 언론고시의 현실을 너무 무시한 설정이 아닌지.
자기 아빠를 뺏어간 탤런트 한혜숙이 파마 가발을 안 쓴다고 쥐잡듯이 몰아세운 극중 작가 장서희는 이불에 누워 자는 장면에서도 완벽한 메이크업을 자랑한다. 그렇게 극중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작가라면 자기 주인공은 당연히 화장을 지우고 재워야 하는 것 아닐까.
맘에 드는 드라마를 만나 우리 이웃 얘기인 양 몰두하며 보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작은 기쁨이다. ‘내 사랑 누굴까’는 녹슬지 않은 김수현표 속사포 대사와 이순재 할아버지의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이 반가워서, ‘인어 아가씨’는 내 일터였던 신문사가 배경인 것이 흥미로워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따금 비현실적인 설정이 완벽한 몰두를 가로막곤 한다.
드라마를 보며 혼자 투덜거리는 날 보고 남편이 혀를 찬다. 맘에 안 들면 보질 말지 왜 보면서 불평이냐는 것이다. 하긴 완벽한 허구인 드라마를 보면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도 완치되지 않은 나의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이덕규(자유기고가)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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