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은 먼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 연관된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지난달 3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라몬 막사이사이상(평화와 국제이해 부문)을 수상한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法輪·49·사진) 스님은 '마음의 평화와 자비의 사회화'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1997년 "남한이 지원한 쌀이 군량미로 쓰인다"는 반대 논리에 맞서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긴급 지원하도록 촉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7박8일간의 필리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4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법륜 스님은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 "지난 50여년 간 냉전 국면으로 일관했던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돌아선 것이 민간 대북지원 단체의 보이지 않는 노력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인정해줘 기쁘다"고 말했다.
법륜 스님은 1969년 경주 분황사에서 불교에 입문해 정토회를 이끌며 법사로 활동하다가 91년 정식 출가했다. 97년과 98년 탈북자 2,000여명의 증언을 모아 국제구호단체와 외국 정부에 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알렸고 현재는 1만1,000여명의 북한 어린이들에게 급식 사업을 하고 있다. '법륜 스님의 구호활동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노력은 중생을 반드시 고통 속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수상위원회의 평가처럼 그는 연기(緣起) 사상에 기반한 자비 정신을 실천해 온 대표적인 수행자다.
스님은 필리핀에서 대학강연과 교민법회, 축하연, 기자회견 등 빡빡한 일정을 지내고 왔다고 말했다. "막사이사이상 재단 관계자와 10시간 동안 인터뷰를 할 때는 진이 빠질 정도였다"며 "숙소에서 10m만 걸어가면 바닷가인데 한번도 못 가봤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스님은 그곳에서도 "기아로 인해 파괴된 북한 사람들의 심성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경제적 지원은 절대 '퍼주기식' 낭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의 대북 지원사업이 정착된 만큼 민간단체인 정토회가 할 일은 기존 사업을 계속 이끌어 가는 정도일 것 같아요. 통일운동은 사회운동 전문가가 해 나가야겠지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정토회는 아시아의 분쟁해결, 난민지원에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스님은 막사이사이상 수상을 계기로 벌써부터 아시아의 여러 분쟁해결 기구에서 정토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남북관계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때 아시아의 분쟁지역에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소수자(북한)는 마음에 상처가 있고 열등의식이 있어 억압해서는 안되고 다수자(남한)가 이해와 포용으로 감싸 안아야 하거든요. 이러한 정신을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펼쳐 나갈 생각입니다."
스님은 이번에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인도의 신세대 지도자 산디프 판데이, 네팔의 예술가 브하라트 코리랄라 등과 협력해 아시아 NGO 활동을 벌여나가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또 내년에는 세계참여불교회의를 유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스님은 10일 열리는 수상 축하연이 끝나자마자 아프가니스탄 난민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로 떠난다. 카불, 바미안, 콴타르 중 한곳에 난민을 위한 학교, 병원, 급식시설 등을 짓기 위해서다.
스님은 상금으로 받은 5만 달러를 대북 지원단체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3일 필리핀에서 귀국한 스님은 여독도 풀지 못한 채 기자간담회를 마치자마자 태풍 '루사'로 큰 피해를 입은 강릉의 자원봉사 현장으로 서둘러 만행을 떠났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