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부자되세요" 외치더니, 자신은 진짜 부자가 됐나? 한 20억원을 벌었나? 김정은의 대답. "그 정도는 아니다. CF 개런티도 세금 떼고, 이것저것 떼면 생각보다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적잖은 돈임에는 틀림없다."'가문의 영광'은 김정은(26)을 위한 영화이다. 호남 주먹의 딸로 소심한 성격이지만 화가 나면 "입을 확 째불텨"라는 막말도 나오는 이중적 성격의 캐릭터다. 기차를 타고 가며 삶은 계란은 안 먹는다더니 남자가 잠든 사이 얼른 계란을 먹는 장면에서는 꼭 콜라라도 한 캔 따주고 싶을 만큼 목이 메는,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잠든 남자가 깨어나려 하자 금세 고개를 쓰러뜨리고 자는 척! '오버'에 가까운 코믹 연기를 자연스런 '캐릭터'로 소화하는 데는 김정은이 '딱'이다.
"데뷔 영화가 코미디였는데 잇달아 코미디를 하면 걱정되지 않느냐. 이런 말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제가 단숨에 한석규 선배 같은 연기가 나오겠어요. 조금씩 몰입할 수 있는 연기를 찾아가는 거죠. 확실한 건 '재밌는 영화'보다는 훨씬 몰입했다는 거죠." 정준호에게 들려주는 연가 '나 항상 그대를'은 김정은이 노래방에서 처음 불러본 곡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부르라는 감독의 주문 대신 직접 피아노를 치며 불렀다. 일부러 떨면서 부른 노래가 처음엔 우스꽝스럽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제법 멜로 분위기가 난다.
김정은은 스크린에서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 "데뷔 때부터 사람들이 "정은아, 넌 예쁜 척 하는 것보다 자연스런 게 좋아" 란 말 때문에 '보이는' 것에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다"는 그는 "이런 자신감 때문에 영화도, 드라마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CF 스타로 떴다 영화에서 쓴 잔을 마셨던 수많은 여배우들의 전철을 밟지 않은 비결은 뭘까. 그는 시간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제 연기는 예전 같으면 규격에 맞지 않다고 욕을 먹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엔 그냥 힘 빼고 확 내지르니까, 아 새롭다, 이렇게 보아주시는 것 같아요."
조리있는 말투에는 자신의 생각이 배어 있고, 유머를 섞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순발력이 필요한 생방송 MC에서도 인기 1위다. 그러나 그의 애드립은 즉흥이 아니다. "학교(건국대 공예과 휴학)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세트장에서 눈치로 배운 연기에요. 전 남한테 욕먹는 게 참 싫거든요. PD들 성격이 좀 급해요. 그래서 "안녕하세요" 한마디하는 장면에서도 이런 톤, 저런 톤으로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순발력이 조금씩 생긴 것 같아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그녀는 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가문의 영관
잠에서 깬 남자가 발을 긁는데 도무지 시원하지 않다. 자꾸만 긁어도 시원하지 않다. 왜 그럴까. 악, 내 발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본 여자의 발! 여자의 오빠들이 들이 닥치고, 남자는 "진짜 잠만 잔 것 같다"고 변명하지만…
'가문의 영광'은 황당한 상황설정부터 웃기기로 작정한 코미디 영화다. 호남의 제일가는 주먹 3J(박근형)의 세 아들(유동근 성지루 박상욱)은 여동생과 하룻밤을 지낸 남자가 서울 법대 졸업생이라는 사실에 '가문의 명예'를 걸고 두 사람의 결혼작전에 돌입한다. 당연히 세 형제의 작전과 협박이 버라이어티 쇼처럼 펼쳐진다.
화가 나면 집안의 근성이 나타나지만, 평소에는 소심하고 사랑스러운 처녀 장진경(김정은)과 명문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억지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어리숙한 남자 박대서(정준호)의 캐릭터가 날렵한 잽처럼 자주 폭소와 실소를 유발한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이전의 조폭 영화들의 설정을 업그레이드 한 것. 대궐 같은 방에 모시적삼을 갖춰 입은 학자 스타일의 3J의 취미는 알까기이고, 사윗감에게 데이트 비용으로 돈다발을 내놓는다. 서울 법대라는 말에 입이 찢어지다가도, 남자가 버티려는 분위기가 생기면 가차없이 "이런 싸가지 없는…" 식의 조폭 대사가 쏟아진다.
설정이 진부하고 관습적이지만 박근형 유동근 성지루 등 중견 연기자들의 '내공'이 이런 단점을 꽤나 잘 포장하고 있다.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두 사람의 '하룻밤'의 비밀이 다소 싱거운 것이 작은 단점이라면, 조폭 영화의 관습을 버리지 못한 채 결혼식장에서 폭력적인 유혈극을 과잉 연출해낸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명문가가 되려는 조폭의 욕망과 조폭 영화의 도덕적 약점을 '가족애'로 포장한 영화. 1997년 '현상수배'를 만든 정흥순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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