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케스틀러(1905.9.5∼1983)는 헝가리 출신의 영국 소설가 겸 저널리스트다. 그는 삶의 전반을 떠돌이로 살았다. 케스틀러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빈에서 대학을 다녔고, 한 독일 신문의 특파원으로 중근동과 파리·베를린을 순회했으며, 경식(硬式) 비행선 발명자 페르디난트 체펠린의 북극 탐험 비행에도 동승했다. 가장 격렬한 체험은 1930년대 후반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겪었다.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한 영국 신문의 특파원으로 그 곳에 갔다가 프랑코 반란군 측에 체포됐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프랑스로 갔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1931년 이래의 공산당원으로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겪은 비참한 감옥 생활은 자전적 소설 '인간쓰레기'(1941)에 담겼다.그러나 케스틀러에게 더 힘들었던 것은 마음의 감옥이었다. 파시즘의 어둠을 가르는 단 한 줄기의 빛을 모스크바에서 발견했던 이 이상주의자에게 들려온 1930년대 후반의 모스크바 숙청 재판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껴 탈당했고, 모스크바 재판을 소재로 '정오의 어둠'(1940)을 발표했다. 혁명의 영웅으로 칭송되다가 갑자기 체포돼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을 자백하도록 강요당하는 루바쇼프라는 사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케스틀러를 20세기의 대표적인 정치소설가로 만들었다.
'전향'이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 뉘앙스를 담아 사용되지만, 기자는 케스틀러의 전향에서 지식인의 용기를 발견한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 '연인'을 쓴 폴 엘뤼아르가 모스크바 재판을 옹호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자는 몹시 놀라고 실망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캐비어를 먹으며 혁명을 찬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낼 수 없는 혁명을 옹호하는 것은 속임수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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