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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투 퍼디션/"아들아, 날 닮지마… 아빠처럼 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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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투 퍼디션/"아들아, 날 닮지마… 아빠처럼 살지마!"

입력
200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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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나처럼 살지 마라.아버지가 두려워한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식이 자신처럼 되는 것. "넌 나를 너무 닮았어. 난 그걸 원치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난 성공했다. 너도 이 길을 따라 오라'고 자신있게 말할 아버지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물며 세계 공황으로 먹고 사는 것이 곧 투쟁이었던 1931년 미국 시카고의 암울한 겨울 바람을 맞고 서있는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들은 주린 배를 움켜쥔 채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거리를 떠돌거나, 하루종일 신문을 뒤적이며 일을 시켜줄 구원자를 기다려야 했다. 마약 거래면 어떻고, 밀주 판매면 무슨 상관이랴. 내 자식을 위해 기꺼이 총을 들고 또 다른 자식을 가진 아버지를 죽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하는 열 두 살짜리 큰 아들놈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무슨 일? 너희들(아내와 두 아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 감독 샘 멘데스)은 아버지 일의 현장을 목격한 호기심 많은 아들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적인 마피아 이야기이다. '모든 걸 주시는' 아일랜드계 마피아 보스 루니(폴 뉴먼)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밑에서 일 하는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 친구이자 루니의 아들인 코너가 조직원을 살해하는 현장을 큰 아들 마이클 주니어(타일러 후츨린)가 본 것이 불행이었다.

아이는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하지만, 불안한 코너는 밤중에 마이클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 놓고는 그의 집으로 가 아내와 어린 동생 피터(큰 아들인줄 잘못 알고)를 죽인다. 조직의 돈을 몰래 빼돌리고 사고만 치는 코니. 루니는 당연히 그를 벌해야 하지만 그저 신의 실수, 악연의 고리를 한탄할 뿐.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 아들을 버리란 말인가."

왜 이 사실을 미처 몰랐던가. 코니 역시 루니에게는 아들이다. "부모가 져야 할 십자가"였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 자식을 죽이는 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아무리 아들처럼 소중한 사람이라도 진짜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데 가만 있을 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그 사람이 아들처럼 소중한 존재라 하더라도.

동일한 절대 가치이면서 양립할 수 없는 상황. '로드 투 퍼디션'이 비극적인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이클은 죽은 아내의 복수 겸 큰 아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루니는 코너를 지키기 위해 청부살인업자인 맥과이어(주드 로)를 기용한다. 아들의 도움으로 은행에 숨겨둔 루니의 검은 돈을 터는 마이클과 그의 뒤를 쫓는 맥과이어. 어린 아들과 힘을 합쳐 아버지 같은 사람(루니)과 그의 아들을 복수란 이름으로 무참히 살해한 아버지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지 못한다. 다만 끝까지 어린 아들이 총을 쏘지 못하게 하고는 "미안하다"라는 말만 남길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아들은 안다. 아버지가 바라는 삶이,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퍼디션은 아이의 이모가 사는 곳. 그러나 아들이 머물 곳은 이모마저 청부살인업자 손에 죽어 비극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도 아니다. 비록 내 아버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아들처럼 반겨줄 새로운 아버지가 있는 곳. 그러나 어쩌면 이 역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톰 행크스의 연기야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폴 뉴먼의 연기도 '대부'의 말론 브랜도에 견줄 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대부' 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대등하게 놓는 것은 과장스럽다. 전작들에 비해 당시 시대 묘사나 마피아 세계에 대한 통찰이 부족해 보인다. 2년 전 감독의 데뷔작인 '아메리칸 뷰티'처럼 미국 가정의 허상과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7월에 개봉하자마자 미국은 열광했고,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를 석권할 것처럼 떠들고 있다. 9.11테러 이후 부활하고 있는 가족주의 때문일 것이다. "내 가족을 파괴하는 자, 그 누구라도 용서치 않으리라." 맥스 앨런 콜린스의 소설이 원작. 7일까지 열리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해 있다.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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