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비행태가 선진국형 '감성 소비'로 전환하면서 통신, 유업, 곡물 등 과거 만성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리던 분야에서 재고가 주체할 수 없도록 쌓이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형 재고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재고누증으로 위기에 빠진 관련 업계는 각종 판촉활동을 동원하고 있으나, 한번 꺾인 소비는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선전화 통화량은 휴대폰 사용이 보편화한 1990년대말 이후 매년 15% 이상 감소하고 있다.
KT에 따르면 1999년 530억8,800만분이던 국내 시내전화 통화량이 2000년에는 460억1,800만분으로 18.8%나 감소했고, 올해에는 99년의 64% 수준인 341억8,400만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유선전화 통화량이 급감하면서 유선전화 회선망 재고도 덩달아 쌓이고 있다. KT 관계자는 "70∼80%를 유지하던 회선이용률이 최근에는 50%대까지 하락했다"고 말했다.
가동되지 않는 회선망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때 '통화는 간단히'를 표어로 내세웠던 전화 회사들은 이제 '통화는 되도록 길게'라는 말을 외치고 있다.
KT는 기존 요금에 1,000∼5,000원만 더 내면 유선전화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정액요금제를 도입키로 했으며, 하나로통신과 온세통신 등은 '정액요금제' 도입과 함께 요금의 추가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만성적인 공급부족 품목이던 쌀과 유제품도 국민들의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재고가 쌓이고 있다. 유가공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6월말까지 흰 우유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9% 늘었으나 소비량은 오히려 1% 가량 감소했다.
이에 따라 남는 우유로 만든 분유 재고량도 지난달 말 현재 2만톤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2월(5,840톤)의 3.4배에 달하는 것이며, 적정 재고량(4,000톤)의 5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밖에도 외식 인구가 급증, 1인당 쌀 소비가 매년 감소하면서 쌀 재고도 급증하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올 10월 말 전국의 예상 쌀 재고량은 지난해(927만섬)보다 400만섬 가까이 늘어난 1,318만섬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재고 급증'에 대해 소비 주도세력이 과거 장년층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입장이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최근의 소비패턴 변화는 외식, 오락·이미용 서비스, 통신 관련 지출의 증대로 요약되며, 이같은 변화는 20대 소비자가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이준엽 교수도 "70∼80년대 소비자들은 의식주 해결이 소비의 가장 큰 목적이었으나, 지금의 20대들은 소비를 통한 즐거움을 중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우유 판촉 광고가 '우유가 몸에 좋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보다는 핑클이나 god 등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청소년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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