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타계한 최경록(崔慶祿) 전 교통부 장관은 청렴 강직한 군인이자 유능한 외교관으로 격동의 시대를 산 초창기 군의 원로다.충북 음성 출신인 고인은 일본 육사와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건군에 참여했으며 한국전쟁 때 11연대장으로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로운 군차량 지원 지시를 거절하고 헌병총사령관 재직시 거창양민학살사건 책임자와 국민방위군 사건의 책임자를 처단하는 등 대쪽같이 처신하다가 52년 육사 교장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그는 60년 민주당의 장면정권 집권과 함께 제13대 육군참모총장에 올랐지만 소장 장교들의 정군운동을 지원하다가 장도영 2군사령관과 보직을 맞바꾸어야 했다. 또 자신의 휘하 부사령관인 박정희 장군이 5·16 쿠데타를 일으키자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원칙을 고수하다가 예편됐다. 육군중장으로 군복을 벗었을 때 옛 부하들이 쌀 가마를 전해줘야 할 정도였으며 집 한 채밖에 없는 그의 청빈한 생활은 장관 시절에도 계속됐다.
예편과 동시에 미국으로 간 그는 "다시 손잡고 일하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간청으로 67년 멕시코 대사로 외교가에 발을 들여 놓았고 71년 영국대사를 지냈다. 74년 교통부 장관에 올랐지만 77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높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1주일 만에 사표를 제출, 국회에서 '장관 사퇴 연설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국회의원(유정회)을 거쳐 80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주일대사로 복귀해 무려 5년 4개월간 최장수 대사를 지낸 뒤 은퇴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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