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낮 12시30분 서울 중구 신당2동 장충초등학교 앞 도로는 학교를 마친 저학년 아이들을 태우려는 학원버스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 차량들 사이로 귀가하는 또 다른 아이들이 위험스럽게 지나다닌다. '장충새싹길'이란 도로명이 무색해지는 광경이다.폭 3m 길이 300m 남짓한 이 길은 자녀 등하교길의 안전을 바라는 학부모들과 내집 앞 통행권·주차권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2,000여명 어린 학생들이 등하교길에 꼭 거쳐야 하는 이 길은 동시에 영세 수공업에 종사하는 주변 주민들이 의존하고 있는 '생계로'도 되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이곳에 난무하고 있는 불법주차에 대한 단속 강화와 교통통제 등의 민원을 수차례 제기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그나마 몇 차례의 마찰 끝에 지난해말 학교 앞 20여m 구간에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펜스를 설치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곳곳이 끊겨 제기능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주차 차량들과 전신주들이 인도를 막고 있어 차라리 차도로 걷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인다.
보다 못한 학부모들은 최근 녹색어머니회를 조직, 매일 아침 6명씩 돌아가며 학교주변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보살피고 있다. 이 모임의 회장인 성명숙씨는 "등교길 양쪽 길가에 주차 된 차를 피해 도로 한가운데로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반면 주민들은 "가뜩이나 좁은 길을 나눠 인도를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차도로 다니고 있다"며 "학교는 아이들의 등하교길 지도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녹색어머니회의 교통지도도 없는 하교길은 아이들을 싣기 위한 학원차들이 몰려들어 더 위험해 보인다. 한 학부모는 "하교길이 걱정되어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자녀 안전을 생각하는 부모와 학원의 교묘한 상술이 합쳐져 가뜩이나 혼잡한 이 길을 더 위험하고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학교 백승희 교감은 "주민들에겐 불편이 따르겠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등·하교시간에 교통통제를 실시해야 한다"며 관계 기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한 경찰이 나서서 교통통제를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이해관계 충돌과 규정 해석에 얽매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오늘도 위험한 장충새싹길을 곡예하듯 지나다니고 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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