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개발과 오염 행위로 동·식물이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일부 동·식물은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등 종 보전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과 보호종 194종 가운데 44종에 대한 환경부의 첫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희귀동식물의 서식현황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새들이 쉴 곳이 없다
하얀 몸에 검은 날개깃을 가진 황새는 과거 중국, 한반도 등에 흔했지만 이제는 2,500∼3,000마리 밖에 남지 않은 세계적 희귀종. 러시아 연해주에서 번식을 하고 서해안에서 겨울을 나는 등 우리나라는 황새의 쉼터였다. 그러나 지난해 11,12월 서산에서 10마리가 관찰된 데 이어 이번 조사에서 낙동강, 제천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 1,2마리만이 발견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밀렵, 농약중독 등으로 상당수 죽어갔으며 간척과 벌목 사업이 황새의 보금자리를 앗아가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곧 멸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아시아에 1,000마리 정도 분포하는 흑고니는 관광개발의 최대 피해자.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 동해안 석호지역에 매년 규칙적으로 찾아왔지만 이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최대 도래지인 고성 화진포호 주변에 일주도로가 개통되고 음식점 등이 증가하면서 흑고니의 날갯짓이 뚝 끊겼다고 환경부는 설명했다. 지난해 광양만 등 일부에서 10마리 내외가 관찰된 게 고작이다.
또 세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1만 마리 이상 발견되는 가창오리는 총기·독극물 등 밀렵 위험에 노출됐으며, 지난해에는 서산에서 조류콜레라가 발생, 수백마리가 떼죽음하는 등 근래 들어 극심한 수난을 겪고 있다. 겨울철새 참수리 역시 먹이부족과 납중독으로 개체수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으며, 한반도의 '단골손님'인 노랑부리저어새는 새만금, 해남 등 잇단 간척사업으로 번식지를 잃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서부 지중해에서 동아시아까지 폭넓게 분포하는 독수리는 지난해 12월 임진강 한 지류에서 244마리가 발견되는 등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에서 월동하는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신히 명맥 잇는 포유류
'강변의 귀염둥이' 수달은 조사한 129개 주요하천 가운데 강원 인제군, 전북 부안군, 경북 봉화군 등 전국 100여곳에서 배설물 등이 발견되는 등 꽤 광범위한 분포를 이뤘다.
그러나 지역별 개체수가 대부분 1가족 수준인 4,5마리에 불과해 사실상 해당 지역의 '마지막 수달'인 셈. 환경부 관계자는 "자연번식을 통한 종 보존을 위해서는 최소 50∼100개체가 있어야 한다"며 "방치할 경우 수달은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하천 주변에 많은 도로와 제방이 속속 건설되고 있어 서식지 단절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나홀로 수달'을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강제이주' 시켜 자연번식을 유도하는 등 수달특구(생태계보전지역)를 조성할 계획이다.
황금박쥐로 불리우는 붉은박쥐는 여름에는 수풀이 무성한 숲이나 대나무밭에서 지내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동굴에서 1마리씩 산다. 아프카니스탄 동부, 인도 북부 등과 함께 우리나라도 주요 서식지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살아남은 개체수는 보잘 것 없다. 전남 함평군 생태계보전지역에만 수십 마리가 관찰될 뿐 강원, 충북 등 다른 지역에서는 1,2마리가 종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종유석 채취 등 사람들의 마구잡이 동굴 출입이 붉은박쥐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고 환경부는 지적했다.
점박이물범은 번식지인 중국 랴오뚱만 환경파괴로 급속히 숫자가 줄어들어 백령도를 찾는 개체수도 감소하고 있다. 평균 118마리가 관찰됐으나 지난해 2월 300여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돼 장관을 연출했다. 하지만 점박이물범을 제외한 고리무늬물범 등 다른 물범류는 60년대 1마리가 포획되는 등 수십 년 전 관찰 기록만 있을 뿐 이번 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음하는 식물과 어류
남방계 여러해살이 풀로 학술적가치가 뛰어난 한란은 제주, 전남 등 거의 모든 서식지에서 남채(濫菜)가 이뤄진 흔적이 있다고 조사팀은 전했다. 한란은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아 인공증식하지만, 어린난까지 무차별적으로 채집하는 바람에 자연상태 존속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나도풍란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이제는 자생지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나도풍란은 전남 일부 섬과 남제주 등 일부 지역은 수년 전만 해도 관찰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소멸이 확인됐다. 또 울릉도 특산종인 섬개야광나무는 등산로 개설과 안테나 설치 등 개발행위로 급속히 훼손돼 100여 개체 만이 남았다.
지난해 강화도 군락지를 사들여 화제가 된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운동의 첫 결실인 매화마름은 경기, 충남, 전북 일대 논에 100∼500개체씩 분포하고 있다. 매화마름은 특히 논에서 관찰될 뿐 늪 등 주변 습지에서는 적응을 못하는 것으로 조사돼 유기농 경작에 의한 '벼와의 공생' 보존 방법이 대두됐다.
수질에 민감한 어류도 지역에 따라 멸종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 고유종으로 맑은 물 자갈 바닥에 사는 감돌고기는 보령댐 건설로 주서식지였던 충남 웅천천에서는 이미 사라졌다. 임진강 준설작업으로 서식지가 크게 파괴된 한국 특산종 흰수마자 역시 흔히 발견되던 금강 일대 개체수가 대폭 줄어들었으며 작은 눈과 1개의 콧구멍을 가진 다묵장어도 수질악화에 신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난개발과 골재채취 등 각종 수질오염 행위가 수중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며 "감돌고기 등 한국 특산 어류의 종 보존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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