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KT 등 24개 기업이 무더기로 자사주를 취득한 3일 코스닥에 등록된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부품 업체인 파인디앤씨는 오히려 보유중인 자사주 24만302주(발행주식의 4.77%)의 일부를 장내 매각했다. 이 회사는 작년 9월25일부터 11월30일까지 주가가 하락했을 때 평균 6,864원에 매입한 주식을 이날부터 13일까지 1만4,250원대에서 하루 5만주 정도씩 장내 매각할 예정이어서 주당 평균 7,000원 정도의 평가이익을 내게 됐다. 회사측은 "강한 장내 매수세와 유동성 등을 검토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지만 세종증권 최시원 애널리스트는 "장외 매각이나 소각하지 않고 시장에 내다판 것은 시장에 충격을 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자사주, 만병통치약 아니다
증시 침체가 지속되면서 상장·등록기업들이 주가 방어를 위해 앞다퉈 자사주 취득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1조원의 자사주를 취득한 것을 비롯, 이달 들어 KT등 15개 거래소 기업이 자사주 취득을 시작했고 10개 코스닥 기업도 지난달 자사주를 사들였다.
하지만 일부 기업의 경우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자사주를 시세조종에 악용해 대주주의 이익을 챙기거나, '주가관리'를 명분으로 저가에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가 오르면 내다 팔아 투자자들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자사주 취득 공시만 믿고 주식을 사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며 "취득 목적이 이익소각인지 단순 주가방어인지에 따라 영향이 다른 만큼 매입 이후의 처리 계획에 대한 공시내용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주가·경영권 방어 이중효과
기업이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자본이 줄어드는 일종의 '자본 공동화'현상인 만큼 상법으로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상장·등록기업의 경우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을 때 투자자 보호를 위해 법인이 사들여 6개월 이후 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기업금융총괄팀 최규윤 팀장은 "자사주 취득은 주식 유통물량을 줄이기 위한 소각이나 가격안정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사주를 취득하면 의결권이 없어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 물량의 감소로 기존 대주주 입김이 강화하는 효과가 있어 경영권 방어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것은 주가가 그만큼 많이 빠져 기업가치보다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증권 이동우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으로 거둬들인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설비투자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자사주 매입 재료는 상승장에서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하락장에서는 주가 방어 효과가 있지만 펀더멘털상의 변화가 없는 단기수급상의 호재여서 주가상승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시세조종이냐 주가관리냐
반면 최근 코스닥 M사의 자사주 매입이 시세조종의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당국의 해석이 나오자 자사주 매입을 보는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
금감원 조종연 조사1국장은 "작전세력이 부당이득을 취득하기 위해 코스닥 등록업체 주식의 시세를 인위적으로 상승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대주주가 보유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시세조종 자금을 지원하고, 자사주의 69.2%를 서로 같은 시간에 함께 사고 파는 통정매매 방식으로 매입한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M사는 "자사주 매입이 9·11테러 이후 주가 방어 차원에서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대주주는 기업 공개 후 무상증자를 거쳐 150만주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아직 한주도 매각하지 않아 매매차익이 없다"고 반박했다.
금감원 하위진 조사1실장은 "일부 기업의 경우 취득 내용과 방법 등 엄격해야 할 자사주 취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데다 작전세력의 자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타인명의의 계좌를 통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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