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 산사를 찾는다. 굳이 종교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모진 풍진 속에서도 수백 년 혹은 천 년이 넘도록 일관된 정신을 지키고 있는 그 터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 거대한 힘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힘겨운 세상에 대한 위안과 고통 받는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자비심을 얻어본다.
■장엄한 다도해 풍광 한눈에
▶남해 보리암 /경남 남해군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작은 절이지만 우리나라 3대 기도터로 꼽히는 곳이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이 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 이름도 보광산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약 200m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 덮어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으로 개칭했다.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만불전, 범종각 등의 절집과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절마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다를 향해 서 있는 해수관음상과 그 앞의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근처에 가면 나침반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높은 곳에 있지만 복곡저수지 매표소로 들어가면 근처에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서 약 500m의 산보 같은 산행만하면 쉽게 보리암에 닿을 수 있다. 체력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상주해수욕장 쪽에서 산행을 하는 것도 좋다. 왕복 약 3시간. 볼 것이 많다. 커다란 바위에 두개골의 눈 구멍 같은 굴이 나 있는 쌍홍문(雙虹門)이 인상적이다. 굴이 둥근 모양이어서 '한 쌍의 무지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굴 속에 들어 뒤로 돌면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부지런을 떤다면 보리암에서 일출을 만날 수 있다. 동해바다의 그것과 분위기가 다르다. 수평선이 아니라 섬의 뒤에서 해가 떠오른다. 그래서 섬의 머리모양에 따라 찌그러져 보인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색칠을 하듯 울퉁불퉁 하다가 완전히 위로 솟으면 그제서야 동그랗게 모습을 갖춘다. 그 역동적인 모습과 색깔 때문에 보리암의 일출은 남해 바다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보리암 종무소 (055)862-6115
■주천강서 아픈다리 쉬어가고
▶영월 법흥사 /강원 영월군
이름 그대로 불법이 흥했던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정암사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남한의 5대 적멸보궁 중 하나가 이 절에 있다. 법흥사는 불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이 문을 열고 위세를 떨쳤던 사찰이다. 그러나 규모는 그 위세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작았다. 많은 풍파를 겪었기 때문이다. 법흥사는 1912년 산불로 소실됐고, 17년의 중건불사를 마치자마자 1931년에는 산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1939년 적멸보궁만을 중수한 채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최근에 대대적인 불사를 통해 옛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다.
최근에 중수된 적멸보궁이어서인지 5대 적멸보궁 중 가장 화려한 단청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운치는 조금 떨어진다. 현판을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는 용머리 장식이나 뜰에 서있는 한 쌍의 석등도 아직 세월의 맛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적멸보궁 뒤로는 자장율사가 기도하던 토굴이 있고 그 옆에 사리를 넣어왔다는 석함이 남아있다.
법흥사에서 또 볼만한 것은 보물 제612호인 징효대사탑비. 탑과 나란히 극락전이 세워져 있다. 사자산 자락으로 저녁해가 넘어갈 때, 짙은 숲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서 있는 극락전은 정갈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법흥사 가는 길에서 주천강을 볼 수 있다. '술샘'이라는 의미의 강이다. 요선암과 요선정이 운치가 있다. 요선암은 수백 개의 너럭바위 군락이다. 물에 씻겨 반들반들한 화강암 덩어리가 각기 다른 크기와 모습으로 강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 넓은 것은 20여명이 올라앉을 정도. 깊게 팬 골마다 강물이 흘러들어 자연욕조를 만들어 놓았다. 요선정은 요선암 옆 절벽에 만들어진 정자이다. 원래 암자가 있었던 이 곳에 1913년 수주면에서 계를 부어 정자를 지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과 5층석탑이 불교도량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흔들바위처럼 생긴 타원형의 돌에 새겨진 마애석불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요선암을 내려다 본다. 정자에는 숙종, 영조, 정조의 친필 어제시가 보관되어 있다. 법흥사 종무소 (033)374-9177
■각국 불상 3,000여점 전시
▶용인 와우정사 /경기 용인시
수도권이어서 쉽게 갈 수 있다. 용인시의 연화산 봉우리를 등에 지고 지어진 절이다. 실향민인 해월 삼장법사가 1970년에 세웠다. 부처의 공덕을 빌어 민족 화합과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서이다. 호국사찰로 대한 불교 열반종의 본산이다. 이 절의 매력은 다양한 종류의 불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만불전이 있다. 각 국에서 보내온 3,000여 점의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만불전 초입에 있는 거대한 부처의 머리(佛頭)와 산 중턱의 열반전에 있는 와불. 불두는 높이가 약 8m에 이른다. 황동 5만 근을 들여 10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불두로 기록되어 있다. 표정이 근엄하다. 와불은 높이가 3m, 길이가 12m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
대웅전터의 옆에 황동 5존 불이 있다. 역시 황동 5만 근으로 10년 동안 만들었다고 한다. 그 옆으로 통일을 기원하며 만든 '통일의 종'이 있다. 무게가 12톤이다. 신라시대 황룡사종과 같은 크기라고 전해진다. 88서울올림픽 때 타종한 것으로 유명하다.
열반전에 이르는 계단 옆의 통일의 돌탑도 눈 여겨 볼만하다. 세계 각국의 불교성지에서 가져온 돌 한 개 한 개를 모아 쌓은 것이다. 아직도 계속 쌓아가고 있다. 와우정사 관리실 (031)332-2472
■고색깃든 적멸보궁 운치가득
▶정선 정암사 /강원 정선군
강원도 정선의 남쪽 끝자락인 사북과 고한은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아직 탄광촌의 풍광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탄광이 들어선 것은 1948년 함백광업소가 문을 열면서부터이다. 50년이 넘게 제 땅과 살을 파내 국가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던 이 곳의 산천은 그 치열했던 열정만큼이나 처절하고 착잡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룩한 생산자였지만 '막장'으로 내몰렸던 많은 광원들의 눈물어린 삶도 곳곳에 묻어있다.
고한에서 만항쪽으로 뚫린 414번 지방도로를 따라 오르면 왼편으로 호젓한 산사가 눈에 들어온다. 태백산 정암사(淨岩寺)라고 쓰여있다. 진흙밭에 핀 연꽃같이 정갈하고 고요하다. 땅과 하늘이 탄가루로 뒤덮였던 때에도 이 절은 그 깨끗함으로 이 곳 사람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탄때와 눈물때를 씻어주었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정암사에는 그가 만든 적멸보궁이 있다. 자장율사는 중국에서 직접 가지고 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옷)를 나누어 봉안하면서 다섯 채의 적멸보궁을 지었다. 그 중 정암사 적멸보궁은 마지막에 만들어진 보궁이고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입적했다. 적멸은 열반의 다른 말이며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뜻한다. 사찰의 법당 중 으뜸이다.
적멸보궁은 범종각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가슴 높이의 야트막한 돌담이 에두르고 있는 적멸보궁과 그 앞뜰은 차분하게 단장된 정원처럼 운치가 흐른다. 고색이 깃든 기둥과 단청이 하얗게 날아간 서까래, 귀퉁이가 비바람에 깎여 둥글넙적하게 된 돌계단….
부처의 사리를 모신 모든 적멸보궁이 그렇지만 이 곳에도 불상이 없다. 수미단에는 빈 방석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사리는 보궁 뒤에 있는 절벽 위 20m 지점의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 봉안돼 있다. 석회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상륜부에 청동장식을 얹은 수마노탑은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7층 모전석탑이다. 탑에 가려면 보궁 오른편으로 난 비탈 계단을 약 200m 올라야 한다. 정암사의 전경이 고즈넉하게 내려다 보이는 수마노탑에서 참배객은 묵상에 잠긴다. 정암사 종무소 (033)591-2469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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