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에서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가 또다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자 논란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등급위원 3명이 사퇴하고,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영화인회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9개 문화단체가 폭넓은 논의를 위해 재심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죽어도 좋아’에 ‘18세 관람가’ 등급을 주는 문제를 두고 1차 심의에서 찬성 4표, 반대 4표였던 것이 재심에서는 반대 10표, 찬성 5표로 오히려 반대, 즉 ‘제한상영가’ 등급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아졌다.
적어도 표면적 여론이 ‘죽어도 좋아’ 지지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등급위원회의 결정은 더욱 보수화한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말’도 많아졌다. 시사회가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 만 18세 이상인 관객만 모아 놓고 시사회를 갖는 등 배급사와 영화사는 여론을 등에 업고 지나치게 ‘방자’한 모습을 보였고, 등급위는 이런 행보에 대해 상당히 불쾌했다는 후문.
또 배급사나 영화사를 노인의 성을 빌미로 크게 한 건을 잡아보려는 ‘상업적 음모가’로 의심하는 이들도 있고, 이런 시각은 감독의 순수한 작품 의도를 훼손하는 중상모략이라는 반박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제한상영가’의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 영화진흥법에 따르면 ‘제한상영가는 상영 및 광고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로서 내용 및 표현기법이 18세 관람가 기준을 벗어나 과도하게 일반국민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반사회적인 내용인 경우’이다.
‘과도하게’ ‘국민정서에 악영향’ ‘반사회적’. 이런 모호한 문구는 언제나 ‘자의성’의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며, 따라서 등급위의 합법적 행위는 언제나 ‘비합법성’ 논란에 휘말리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적어도 영화라는 장르에서 ‘표현의 자유’란 끊임없는 개별적 투쟁을 통해 성취해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죽어도 좋아’ 논쟁은 역시 의미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모호한 법률적 정의도 한 번 더 시험을 거치게 될 것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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