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다시 불거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선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둘러싼 '병풍(兵風)사건'으로 정국이 격랑을 치고 있다. 검찰이 한달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아직 폭로자인 전 의무부사관 김대업(金大業)씨와 한나라당의 '진실게임'은 어느 쟁점 하나 명쾌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진상규명의 어려움을 들어 '장기전(長期戰)' 채비를 갖추고 있으나 흘러가는 '대선 시계' 앞에 여야간의 장외공방은 사생결단식으로 격렬해지고 있다. 검찰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병풍과 대선과의 함수관계도 점차 복잡해지는 양상이다.이정연(李正淵)씨 병역비리 의혹이 정치권의 공방속에 미로(迷路)속을 헤매고 있다. 은폐 대책회의와 녹음테이프 진위공방, 병적기록표 위·변조, 군검찰의 정연씨 내사파문 등 무수한 의혹들이 난마처럼 얽혀있어 검찰도 수사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연씨를 둘러싼 의혹의 진실은 무엇일까.
병적기록표 위·변조 의혹 정연씨 병적기록표에 대해서는 그동안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대략적인 의혹만 10여가지가 넘어 '오기(誤記)와 의혹의 집합체'로 불릴 정도.
우선 정연씨의 이름과 주민번호, 동생 수연·연희씨의 이름이 잘못 기재됐다. 여기에 사진과 철인마저 없어 본인 확인도 힘들다는 의문을 낳고 있다. 종로구청 직원이 자신이 필적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백일서(白日瑞) 전 춘천병원 진료부장의 2군데 필적이 서로 다른 점도 의문.
여기에 지방병무청장과 징병관의 직인 대신 부하직원의 도장이 찍히고 유학에 따른 입영연기 기록이 시간순서가 뒤바뀌거나 중복기재된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나라당측은 "단순 실수이거나 통상적인 작성관례에 따른 것으로 유사사례가 많다"고 해명했지만 김대업씨는 "비리를 숨기기 위해 91년 이후 재작성됐다"고 공격하고 있다. 검찰은 병무청과 구청 직원 등 50여명을 소환 조사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녹음테이프 진위공방 김대업씨가 제출한 김도술 전 국군수도병원 주임원사의 녹음테이프는 아직도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1차 성문(聲紋)분석 결과,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목소리의 동일인 여부는 판정할 수 없지만 테이프가 의도적으로 편집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주 원본 테이프를 제출 받아 재감정에 들어갔다. 녹음테이프가 진짜로 판명될 경우, 한인옥(韓仁玉) 여사가 김도술씨에게 2,000만원을 주고 춘천병원에 정연씨 면제를 청탁했다는 녹취록 내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판정불능이나 가짜로 드러나면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군검찰 내사 파문 1999년 병역비리 합동수사본부가 정연씨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똥은 군내부로 번졌다. 당시 군검찰관 유관석(柳灌錫) 소령은 "군검찰이 정연씨 병역비리를 내사했으며 수사팀장인 고석(高奭) 대령으로부터 '한인옥 2,000만원'이 적힌 김도술씨 진술서도 봤다"고 주장했고 동료인 김현성·남성원 검찰관도 각각 "정연씨 관련 첩보를 보고했다" "'한인옥, 2,000만원, 춘천병원'이란 첩보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 중령도 "병무청이 정연씨 병적기록표 제출을 거부했으며 고 대령이 고위층 내사파일을 가져갔다"고 이들 진술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고 대령과 국방부는 "정연씨 내사는 없었고 진술서도 없다"며 내사설을 정면 부인하고 있다. 현재 최대 쟁점은 진술서와 내사파일이 존재하는지 여부. 군내사가 사실이라면 고 대령측이나 국방부 모처에 자료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은폐 대책회의 김길부(金吉夫) 전 병무청장이 올1월 검찰조사에서 은폐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자백했는지가 관건이다. 김대업씨의 폭로에 대해 대책회의 참석자로 지목된 김 전 청장과 전태준 의무사령관, 이회성씨, 한나라당 J,K 의원 등은 이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
그러나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은 "박영관(朴榮琯)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 올3월 '김 전 청장에게서 대책회의 관련 진술이 나왔는데 정치권에서 쟁점을 삼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발언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의 대책회의 관련 진술 여부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지만 진술의 존재 및 쟁점화 요청설이 사실일 경우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직·간접 거론 인물만 20명 가까워
지난달 초 검찰의 '신병풍(新兵風)' 의혹 수사착수 이후 직·간접적으로 이름이 거명된 인물만 벌써 20명에 가깝다. 핵심인물은 의무부사관 출신의 김대업(金大業)씨. 그는 지난달 12일 "한인옥(韓仁玉)씨가 전 국군수도병원 주임원사 김도술씨에게 이정연(李正淵)씨 병역면제 청탁과 함께 2,000만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녹음테이프를 전격 공개한데 이어 국회의원 15명의 병역비리 연루설 기무사와 군 내부인사의 수사중단 주도설 등 연일 새로운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김씨에 의해 정연씨 병역면제와 신검연기 과정에 개입했다고 지목된 인물들은 변재규 전 헌병 준위와 김도술씨, 당시 병무청 유학담당 직원, 백일서(白日瑞) 전 진료부장 등 당시 춘천병원 관계자 등이다.
전 합수부 수사팀장 이명현(李明鉉) 소령과 유관석(柳灌錫) 소령은 김씨와 함께 군 검찰의 정연씨 내사착수 및 기무사 등의 수사중단 주도설을 제기,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 전 검찰부장 고석(高奭) 대령이다. 원용수(元龍洙) 전 준위를 구속하면서 '단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고 대령은 그러나, 최근 김씨로부터 관련자료 은닉 및 수사중단 주도자로 지목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인종(金仁鍾) 전 중장(대장 전역)과 손모 전 기무사 감찰실장 등도 김씨에 의해 수사중단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1997년 대선 직전 정연씨 병적서류 변조·파기 작업을 논의했다는 소위 은폐 대책회의 참석자로는 한나라당 J,K의원과 김길부(金吉夫) 전 병무청장, 전태준(全泰俊) 전 의무사령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장모 전 춘천병원 행정관과 김모 전 의무사 인사처장 등은 김씨에 의해 실무작업 지휘자로 지목된 상태. 그러나, 고 대령과 전 전 사령관 등이 김씨를 상대로 각각 10억원씩의 소송을 제기한 것을 비롯, 관련자 대부분이 김씨 주장을 부인하고 있어 진상규명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兵風의 전망
이른바 '병풍(兵風)'은 이회창 후보가 신한국당 유력 대선후보군중 한명이었던 97년 초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야당으로부터 이 후보의 장·차남이 모두 군면제자라는 사실에 대해 비공식적인 문제제기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이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 이틀만인 같은 해 7월3일 국민회의 김영환(金榮煥)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병역비리의혹을 공식 제기하면서 이 문제는 대선정국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급기야 대선을 며칠 앞둔 12월10일 서울지방병무청 8급 총무과 직원 이재왕씨는 "정연씨가 고의감량을 통해 병역을 면제 받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후보의 대선패배와 함께 유야무야된 듯 했던 '병풍'은 그러나 올해 5월 김대업씨의 '병역은폐대책회의' 폭로로 재점화했다. 병역면제 알선에 직접 관여했던 과거경험을 바탕으로 수년간 진행된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했던 김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올 1월 서울지검 조사에서 '97년 대선직전 한나라당 J의원, K특보 등과 함께 병적서류 파기 등을 위한 은폐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은 당사자인 김 전 청장과 서울지검측이 부인함에 따라 묻혀지는 듯 했으나 7월31일 김씨가 "이후보 부인 한인옥씨가 직접 면제청탁에 관여했음을 입증하는 물증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검찰은 고발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1부에 배당,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김씨는 99년 병역비리 군검합동수사 당시 병역브로커 김도술씨를 조사하면서 한인옥씨 관련진술을 녹음했다며 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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