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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고추장이 주는 苦樂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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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고추장이 주는 苦樂의 균형

입력
200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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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을 시킬 때마다 고추장을 더 달라고 주문한다. 다채로운 답변들이 재미있다. 대개는 선심 쓰듯 "이게 뭔 줄이나 아세요?"라고 되묻는데,"어머나! 먹고 나면 얼마나 매워 할까!"와 같은 근심어린, 또는"재미있겠는 걸, 인상을 찌푸릴 꺼야"와 같은 장난끼 어린 대답도 돌아온다.간혹 고추장이 종지에 따로 담겨져 나온다. 식당의 서비스가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백인인 탓이다. 신경에 거슬렸다. 차별이고 지레짐작이었다. 난 다른 사람들처럼 매운 걸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겉모습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숟가락을 들면,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씨름선수'가 되어 달려든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즐기기 위해 먹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통을 감수하며 먹는 사람이다. 나는 고통스럽게 먹는 것을 즐기는 축이다. 아주 진한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마시는 것을 좋아해 입 안을 데기 일쑤이고, 어렸을 땐 너무 시큼해 톡 쏘는 레몬 사탕을 좋아했다. 아침부터 오믈렛을 멕시칸 스타일의 매운 소스에 담가 먹기도 한다.

입 천장에서의'우아한 발레'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혀 돌기 하나하나를 간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한국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대부분 식사라도 할라치면 전투에 나서는 전사들처럼 음식을 향해 '돌격한다'. 한국에서 먹는 것의 즐거움은 매운탕을 사이에 둔 격렬한 승강이, 그리고 마지막 한 숟갈을 내려 놓는 순간의 고요함에 있다. 몸을 뒤로 젖히고 만족스러운 숨을 내쉴 때에도 구식 소총처럼 입 안에 뜨거운 기운이 남아있다.

16세기 고추가루 무역이 시작됐을 당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문화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17세기에 한국에 상륙하자 사람들은 "어, 좀 독하네. 우리 스타일이야."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 매운 맛이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과 '삶의 고통'사이의 평형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운 맛을 통해 산다는 것과 먹는다는 것의 기쁨과 고통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더운 여름에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참을 수 없이 뜨겁다. 그런데 곧 세상이 한 바퀴 돌고, 그러고 나면 시원해 진다.

/웨인 드 프레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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