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미스매치'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국가 부도사태가 다시 올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산업은행 정건용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은행들의 '미스매치'관행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미스매치란 자금을 단기로 빌려, 장기로 운용하는 '기간불일치'를 가리키는 뜻으로 금융기관의 방만한 자금운용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경고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가신용 등급 상승에 힘입어 올들어 은행권의 외화차입 규모가 급증하는 가운데 대다수 은행들이 1년 미만의 단기로 외화를 조달, 주로 3∼5년 짜리 장기자금으로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들은 특히 빌린 외화를 중소기업 등에 장기시설자금으로 대출해주면서 변동금리인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 연동금리를 그대로 적용, 금리 상승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하고 있다.
올 2월 만기 1년에 0.35%의 리보 가산금리로 미화 1억달러를 차입한 국민은행의 경우 총 외화여신(5억2,000만달러) 가운데 1년 이하 단기운영자금으로 나간 규모는 1,000만달러에 불과한 반면 장기시설자금은 무려 5억1,000만달러에 달해 98%가 장기자금으로 대출된 상태다.
이밖에도 하나(미화 1억5,000만달러), 한미(8억 홍콩달러), 신한(12억 홍콩달러) 등이 올들어 1년 미만의 단기 외화자금을 잇따라 해외시장에서 차입해 왔지만 주로 장기시설자금 대출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차입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다시 빌리거나 만기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 기간 일치에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며 "은행마다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선 미스매치에 따른 위험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세계 경제의 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은행들의 방만한 자금운용은 금융위기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외화대출상품은 대부분 리보에 연동한 변동금리이기 때문에 경제상황 변화로 갑자기 금리가 오를 경우 기업들은 이자상환 부담으로 큰 타격을 받을 우려도 크다.
더욱이 미스매치가 많은 은행들은 해외 차입선이 만기연장을 거부한 채 자금회수에 들어갈 경우 심각한 유동성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많은 금융기관들이 해외에서 주로 1년 미만짜리 단기자금을 빌려와 기업에 1년 이상, 심지어 8∼10년의 장기대출을 해줬다가 화를 자초했다"며 "금융당국이 일선 은행의 외화대출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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