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힘이 없어 짓눌려 사는 서민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선거이다. 당당한 한 표로 후보자들을 심판하고 자신들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선거를 100여일 앞두고 서민들은 정치에 대한 희망을 잃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 나라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기만 하고 믿고 따를만한 확실한 후보자가 없다.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뿐이다. 두 번에 걸친 총리 인사청문회가 이미 정치 싸움판의 성격을 드러냈다. 서민들과 아픔을 같이 하고 국정을 올바르게 이끌 총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질과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후보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데 치중했다. 후보자의 설명은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처리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놓고 극단적 대결을 벌이더니 급기야 법무부 장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수사'라고 주장하며 해임안을 가결시키려는 한나라당과 표결 자체를 실력으로 저지하려는 민주당의 막가는 싸움은 보기가 민망하여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한 경제대국에서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뭐길래, 그것 하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죽기살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선거판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생각하면 깜깜하다. 무슨 험담거리를 또 찾아내고 어떻게 싸움을 벌일지 상상만 해도 참담한 느낌이 든다.
이 가운데 근로자들에게 억울한 세제 개편안이 나왔다. 정부의 올해 세제 개편안은 근로소득세를 동결하고 비과세와 조세감면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세금을 더 거두는데 주안점을 둔 셈이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정부는 8,3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둘 예정이다. 정부의 재정 사정은 내년 이후 더욱 어렵다. 당장 공적자금을 재정에서 25년간 나눠 갚기로 한 49조원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는 건강보험이나 각종 연금을 세금으로 메울 일이 줄지어 있다. 앞으로 계속 세금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정치는 싸움만 하는 상황에서 힘없는 근로자들의 허리가 휘고 있는 것이다.
이 틈에 일부 부유층은 투기와 과소비로 들떠 있다. 소득이 한 푼도 없는 주부가 아파트를 26채나 갖고 있고, 4년간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3,300만원의 소득을 신고한 변호사·의사 부부가 재건축 아파트 10채를 사들였다. 일정한 직업도 없는 사람들이 해외 호화휴가를 수시로 다녀온다. 해외여행 급증으로 지난달 여행수지가 4억 900만 달러 규모의 사상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그대로 있어야 하는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희망인 선거를 살려내야 한다. 그리하여 서민들의 숨을 막는 고통의 굴레를 벗고 다같이 나라 발전에 나서는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선거를 정책의 대결구도로 시급히 바꿔야 한다. 구조조정의 물살에 휩쓸려 직업을 잃은 실업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날로 벌어지고 있는 소득 격차의 해소방법은 무엇인가? 공적자금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어떻게 갚을 것인가? 굶주리는 북한 주민은 어떻게 도울 것이며 어떤 통일정책이 필요한가? 무너진 학교 교실을 어떻게 복구할 것이며 과외를 없애는 방법은 없는가? 우리가 당면한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들에 대한 답을 놓고 후보자들이 경쟁을 벌이는 선거, 그것이 바로 선거를 살리고 희망을 되찾는 길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잘 사는 선진국의 꿈이 있다. 오는 12월 떨구었던 고개를 들고 다같이 희망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선거를 기대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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