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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피해로 본 구멍뚫린 水防/준비안된 治水… "준비된 官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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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피해로 본 구멍뚫린 水防/준비안된 治水… "준비된 官災"

입력
200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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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물난리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바로 관재(官災)입니다." 이틀간의 강풍과 폭우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수재민들은 이번 재앙은 상당부분 무사 안일한 당국의 재해대책이 빚은 필연적인 결과라며 분노하고 있다. 일부 수재민들은 분노에 그치지 않고 2일 항의 집회를 갖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어 이번 초대형 수재의 파문이 책임 논란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달 폭우 때도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경남 김해시 한림면 주민들이 상경 항의시위를 했었다.태풍경보 발령되자 땜질 복구

경남 합천군 청덕면 4개 마을 주민 460여명은 불과 20여일 사이에 물난리를 두번이나 겪고 있다. 지난달 집중호우때 가현제(堤·제방)가 유실돼 침수피해가 발생했는데도 합천군이 방치하다 30일 태풍 예보가 나오자 부랴부랴 응급복구를 한 후 또다시 맥없이 무너져 내려 주택이 침수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붕괴된 인근 광암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복구작업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눈가림식이어서 이번 폭우로 다시 쌓은 제방 밑으로 강물이 스며들어 '물막이'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가현마을 주민 이원규(李源奎·59)씨는 "지난달 집중호우 이후 합천군과 경남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철저한 원인 규명과 조속한 복구를 수차례 촉구했으나 당국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며 "결국 늑장 부실복구를 했다가 또 다시 재앙을 불렀다"고 분노했다.

난개발과 늑장대처가 화 키워

이번 태풍의 최대 피해자인 강원 강릉 시민들도 900㎜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피해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지자체가 안전대책보다는 눈에 띄는 사업에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고 소리 높이고 있다.

강릉시가 시내 하천의 길이가 짧은데다 경사가 급해 집중호우 시 큰 피해가 예상됐는데도 하천 둔치에 주차장이나 광장을 만들면서 결국 하천의 폭을 좁게 해 물이 쉽게 빠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릉지역 수재민들은 또 당국의 무성의한 안전관리대책이 대형 피해를 초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31일 동막저수지 붕괴로 400여가구의 가옥이 폐허가 되다시피 하고 인근 논이 자갈밭으로 변한 강릉시 구정면 어단2리 주민들은 "비가 한창 올 때 저수지 수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해달라는 요구를 당국이 철저하게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 저수지가 붕괴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민 30여명은 2일 강릉시청 재해대책 상황실을 찾아 "저수지 붕괴는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엄연한 인재"라고 항의하며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주민민원 무시당해

297.2㎜의 폭우로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된 경북 김천지역 주민들도 직지사 쪽에서 내려오는 직지천(폭 90여m)과 지례 방면에서 낙동강으로 흐르는 감천(폭 280여m)에 많은 다리가 무분별하게 건설되면서 이번 홍수피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하천이 김천시내에서 합류하는 지점 인근 200m 이내에만 2000년부터 5개의 교량이 차례로 들어서 50개에 달하는 교각이 물의 흐름을 막아 물이 역류하면서 범람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6월 "감천 합류지점 하류의 하천 폭을 대폭 넓혀 줄 것"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청와대와 건교부에 내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방치하다 하루 아침에 주민들을 이재민으로 내몰았다.

산사태 역시 예고된 관재

가장 많은 사망·실종자를 낸 산사태도 당국이 사전에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유가족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량 6대가 매몰돼 4명이 숨진 강릉시 왕산면 산사태가 대표적인 예. 주민들이 수년전부터 비가 오면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해 왔지만,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인재가 발생했는데도 해당 지자체와 관계 당국은 예산 타령과 무신경으로 일관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올해 강원도내 국도변 절개지 보강공사에 쓸 돈은 7억원에 불과해 예산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올해처럼 수십년에 한번 오는 폭우에 대비해 시설을 보강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강릉=곽영승기자 yskwak@hk.co.kr 합천=이동렬기자 dylee@hk.co.kr김천=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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