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연휴로 시작되는 9월 첫째 주는 할리우드의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시기다. 올 여름의 최고 성공작은 무엇일까. 첫째 주 1억 달러라는 새 기록을 만든 '스파이더 맨'으로 시작, '사인'으로 마무리한 올 여름은 실망작이라고는 없는, 재미있는 블록버스터들이 넘쳐나는 한해였다. 하지만 성공작의 의미를 조금 달리 본다면 올 여름의 진정한 승자는 '마이 빅 팻 그리크 웨딩'(My Big Fat Greek Wedding)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요란뻑적지근한 그리스식 결혼식' 정도로 풀이될 500만달러짜리 초미니 예산의 이 영화는 '슬리퍼(Sleeper)'라고 불리는 깜짝 히트작에서 벗어나 이젠 할리우드의 요란한 사건(Phenomenon)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4월 대도시의 열 몇 개 극장에서 개봉, 재밌다는 소문을 내기 시작한 영화는 무려 5개월간이나 상영하면서 야금야금 박스오피스 차트의 순위를 한자리씩 잡아먹기 시작해 지난주에는 '사인' '트리플' '스파이 키드2'에 이어 4위에까지 올랐다. 관심은 이 영화가 과연 긴 장정 끝에 1위에 오르느냐 하는데 쏠려있다.
할리우드의 흥행 공식 같은 책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의 수익 90% 이상을 개봉 후 2∼3주안에 거둬들이는 요즘 같은 때 20주라는 긴 시간동안 차곡차곡 1억달러 흥행의 선을 넘은 흥행 행보도 그렇지만 영화에선 도무지 전형적인 흥행의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영화의 내용? 뚱뚱하고 예쁘지 않아 시집 못 가고 구박 받던 그리스 이민자의 30대 딸이 잘생긴 백인 청년을 만나 그리스식으로 시끌벅적하게 결혼식을 한다는 게 전부다. 그리스식 전통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딸의 부모와 전형적인 미국 백인 가정의 조용한 분위기가 만나면서 곳곳에서 생기는 문화적인 충돌이 이 코믹 영화의 핵심이다. 전체관람가 등급인 영화에는 섹스 장면 하나 없고 스타는 물론 없다.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처럼 기막힌 마케팅 전략도 없었다. 하지만 평론가들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은 영화 속의 따뜻한 유머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10대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전연령층의 관객을 불러들이고 그들로 하여금 이 무공해 영화에 대해 자발적인 입소문을 내게 했다.
이 영화가 낳은 신데렐라는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을 맡은 30대 후반의 그리스 출신 배우 니아 바르달로스. 연극계를 전전하며 단 한편의 영화에라도 출연하는 게 소원이었던 그는 같은 제목의 1인극을 우연히 관람한 톰 행크스의 아내 리타 윌슨의 눈에 띄었다. 그리스 출신인 리타는 남편까지 프로듀서로 끌어들였고 그동안 수없이 "그리스 말고 다른 나라로 바꾸는 게 흥행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라며 거절 당했던 그의 시나리오는 온전히 국적을 유지한 채 할리우드의 성공작으로 남게 됐다.
이윤정/재미영화프로듀서· film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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