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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희망은 절망후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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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희망은 절망후에 온다

입력
200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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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 정치를 보면 아주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정당들간 타협 또는 야합을 가리켜 '화합의 정치'니 '상생의 정치'니 하고 떠드는 걸 보던 것에 비해 훨씬 더 상쾌한 느낌을 준다. 왜? 갈 데까지 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곳이 없다.희망은 절망을 겪고 난 다음에 오는 법이다.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도 않은 채 희망을 말하는 건 괜한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것의 핵심은 정치를 낭비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정치를 해봐라 하고 멍석 깔아주었더니 늘 해대는 게 싸움질이다. 국민을 위해 싸운다면 그건 장려해야 할 일이지 꾸짖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싸움이 아니다. 각자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싸움질이다. 그 잇속이라고 하는 것도 힘 있는 자의 '눈도장'을 받기 위한 수준으로까지 전락해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공정한 싸움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다.

그걸 원없이 구경한 많은 사람들이 '역시 박정희가 옳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박정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들도 정치판의 그런 이전투구에 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박정희 18년 체제는 정치란 보통 사람들이 근접해서는 안될 더럽고 위험한 영역이라는 문화를 고착시켰다. 그래서 국민은 영원한 구경꾼으로 머무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국민은 개입할 힘도 뜻도 없다. 그저 선거 때나 '더 미운 쪽' 떨어뜨리기 위해 표를 던지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평소엔 정치판을 향해 침을 뱉고 저주를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할 바를 다 했다고 믿는다. 다음 선거에선 또 '더 미운 쪽' 떨어뜨리는 투표를 하는 것으로 민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했다고 믿는다.

그런 잘못된 믿음에 균열이 일어나기 위해선 절망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절망이 필요하다. 절망을 해야 비로소 국민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지금 한국 사회는 바로 그런 전환기에 처해 있다.

사실 정치가 민생을 위한 서비스가 되는 '정치 혁명'은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정치가 썩었다고 욕하는 국민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모두 정당에 가입하거나 새로 정당을 만들어 정치판의 내부 혁명을 해버리면 아주 쉽게 끝나는 일이다. 그 쉬운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고 있는, '정치란 더럽고 위험한 것'이라는 박정희 18년 체제의 유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치판이 보여주고 있는 절망적인 작태는 이제 그 유산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정치판을 타락한 특권계급의 놀이터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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