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 지구정상회의(WSSD) 등 굵직굵직한 국제회의가 열릴 때면 '스타벅스' 매장은 비상에 들어간다. 반 세계화 운동가들에게 스타벅스는 맥도날드와 나이키처럼 세계화의 허구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주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세계적 브랜드로 급성장한 스타벅스의 초록빛 로고에는 세계화가 갈라놓은 선진 거대자본과 토착 주민의 명과 암이 교차하고 있다.창업자 하워드 슐츠(51) 회장이 15년 전 미국 서부 시애틀에 있는 커피숍 17곳에서 시작한 스타벅스는 현재 전세계 28개국에 5,689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커피제국으로 성장했다. 매출은 매년 20%씩, 순익은 30% 이상씩 늘어나는 성장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10년 전 기업을 공개한 이후 스타벅스의 주가는 2,200% 가까이 치솟았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9일자)에 따르면 이 같은 상승률은 같은 기간 월마트, GE,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IBM, 펩시콜라 등 대표적 우량기업의 상승률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스타벅스의 이같은 성공에는 미국적 가치가 범람하고 있는 세계화의 현실이 반영돼 있다. 햄버거와 콜라처럼 커피도 각국의 전통차를 물리치고 세계인의 입맛을 빼앗아 가고 있다. 커피의 연간 소비량은 4,000억 잔이 넘을 정도다. 이를 틈타 스타벅스 매장은 중국의 베이징(北京)에서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3년 안에 전세계 매장을 1만 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그늘에는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커피 원산지 주민들의 피폐해진 삶이 웅크리고 있다. 미국의 MSNBC방송은 1일 스타벅스와 네슬레 등 커피 관련 다국적 기업들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소규모 경작에 의존하는 원산지 주민들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앙아메리카에서만 54만 명에 이르는 원산지 주민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이들이 커피를 따서 하루동안 손에 쥐는 돈은 스타벅스의 '더블 라떼' 값보다 적은 2달러 미만에 불과하다.
이같은 위기는 1차적으로는 대량 경작에 따른 공급과잉으로 국제 원두 가격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MSNBC는 커피산업으로 생기는 이익의 90%가 유통·소매업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왜곡된 산업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매가격은 5년간 평균 27%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커피 경작 주민들의 수입은 5분의 1로 오그라들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원주민들은 도시의 슬럼가로 몰려들거나 국경을 넘는 경제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남아 있는 농민 중에는 커피 대신 보다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대마초나 양귀비 등 마약작물을 재배하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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