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의 안일한 수방대책과 매년 반복되는 땜질식 복구가 태풍 '루사'의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수재민들 사이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번 태풍은 전례없는 폭우와 강풍이 동반돼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체계적인 방재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당장 수해지역에 대해 '특별재해지역' 지정에 이은 조속한 복구와 함께 하천이나 절개지 관리법규 등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고,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치수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관련기사 3·4·19·30·31면
무성의한 당국의 대처와 무분별한 개발이 피해를 키운 사례는 이번에도 적지 않다.
지난달 집중호우 때 낙동강 제방 2곳이 터져 수몰됐다가 불과 20여일 만에 또다시 재난을 당한 경남 합천군 청덕면 주민들은 2일 "지난달 제방이 유실된 하천을 그대로 방치하다 태풍예보가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땜질했다가 또 물난리를 겪었다"며 "이번 피해는 관재(官災)"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북 김천시민들도 "감천과 직지천이 만나는 지점 200m에 무려 5개 교량을 밀집 건설하는 바람에 50여개에 달하는 교각이 물흐름을 막았다"고 분개했고, 강릉 시민들도 "태백산맥에서 흘러드는 하천의 길이가 짧은데도 둔치에 주차장과 광장을 마구잡이로 건설, 하천 폭을 크게 좁혀 결과적으로 수해를 불러 들인 꼴"이라고 주장했다.
도로건설을 위해 산을 깎을 때 암반과 토양의 성질 등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63도의 경사각을 유지하도록 돼 있는 무책임한 절개지 관리법령은 이번 태풍 때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부의 재해대처가 예방보다는 임시복구에 치중하는 것도 문제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해 복구사업에 95억원을 사용했지만 예방에는 고작 6건에 14억원만을 썼으며 올해도 예방차원의 사방사업비는 6건 31억원에 불과하다. 한국도로공사가 올해 강원도내 국도변 절개지 보강공사에 쓸 예산도 8건 7억원에 불과하다.
주요 간선철도가 50년 이상 지나 노후상태를 보이고 있는데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최소한의 유지·보수에만 급급해온 탓에 이번에 전국의 주요 철도망이 일시에 마비되는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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