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질 의제 중 최대의 쟁점은 일본인 납치 의혹 해결(일본)과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한 배상 문제(북한)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양측은 회담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일본측은 납치 의혹의 선결이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입장이었고, 북한측은 배상 문제가 최우선 과제라고 맞서 왔다.
▶과거 배상 문제
북한측은 시종일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국교정상화의 선결과제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대해 일본측은 1965년 한일 수교협정을 모델로 삼아 양측이 교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배상은 불가능하고 식민지 통치로 인한 재산상 손실에 대한 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수준을 고수할 방침이다.
북한측은 또 일본이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전쟁에 책임이 있고 지금까지 대 북한 적대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에 전후(戰後) 기간에 대해서도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1990년 9월의 조선노동당과 일본 자민당·사회당의 '3당 공동선언'에서 "3당은 일본 정부가 국교관계를 수립하게 되는 것과 관련하여 과거 36년 간의 식민지지배와 그 이후 45년 동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게 끼친 손해에 대하여 충분히 보상하여야 한다고 인정한다"고 이미 전후 보상에도 합의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91년 국교정상화 2차 교섭 이후 이 3당 합의는 정당간의 상징적 선언이므로 정부에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측의 선(先)배상 후(後)수교론과 일본측의 선 수교 후 경제협력 방식론이 첨예하게 맞설 것으로 보인다. 국교정상화 교섭이 본격화하면 '배상금' 형식이든 '경협 자금' 형식이든 북한측에 일본이 줄 돈의 액수 계산도 관심거리다. 한일 수교 때 한국측이 재산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에 일본측은 유상 2억 달러, 무상 3억 달러 등 5억 달러의 경협차관을 제공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65억 달러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북일 간에 구체적인 액수가 논의된 적은 없지만 일본측은 30억∼50억 달러, 북한측은 80억∼100억 달러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경제회복이 시급한 북한측이 수교 이전에 국가승인을 먼저 하고 어떤 형태로든 경제지원부터 시작할 것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일본인 납치 의혹
납치 의혹이 처음 북일 국교정상화에 장애물로 등장한 것은 1992년 8차 교섭 때였다.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金賢姬)가 한국측 조사과정에서 '이은혜'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납북 일본 여성에게서 일본어를 배웠다는 진술이 나온 점에 대해 일본측이 조사를 요구했다. 북한측은 "우리와 관계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섭이 결렬됐다.
1997년 2월에는 1977년에 니가타(新潟)에서 실종됐던 여중생 요코다 메구미(당시 13세)가 북한에 납치됐다는 일본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와 일본 내에서 반북 여론이 거세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 경찰은 북한에 의한 납치 의혹 사건을 재조사해 1979∼1980년대 7건 10명이 납치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일본측은 1997년 12월 2차 적십자회담에서 7건 10명의 명단을 전달하고 조사를 요구했다. 북한측은 "납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전제 하에 "일반적인 행방불명자로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측은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 양측 사이에 행방불명자가 있다는 인식 하에 일본 내에서 소식이 두절된 북한 국적자들에 대한 조사도 요구해 어디까지나 행방불명자의 소식을 확인하는 '인도적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또 이같은 인도적 문제는 국교정상화 후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올 3월에는 1983년 영국 어학연수 중 실종된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당시 23세)가 요도호 납치범들에 의해 북한에 납치됐다는 일본 경찰의 조사가 나와 납치 의혹은 모두 8건 11명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납치 의혹은 요도호 납치범들의 신병 인도와도 물리는 문제가 됐다. 일본 경찰은 또 7월 북송 장기수인 신광수(辛光洙)씨를 납치 의혹과 관련한 혐의로 국제수배했다. 그동안 북일 간 교섭에서는 일본측이 납치 의혹 일본인들을 제3국에서 발견되게 한다든지 하는 비공식적 해결 방안을 타진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북한 방문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잇달아 모임을 갖고 "이번만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정상회담에서 최소한 소재와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국교정상화 교섭의 재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日 "괴선박 제재 없을것"
일본 정부는 지난 해 동중국해에서 침몰한 괴선박이 선체 인양 후 북한 공작선으로 판명 나더라도 대북 제재 조치를 발동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교도(共同)통신이 1일 보도했다.
이 방침은 17일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호적인 환경을 유지하고 일본인 납치자 의혹 해결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괴선박 인양 상황을 설명하고 사건 재발 방지를 수교 교섭 재개의 전제로 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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