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미국 연방 이민귀화국(INS)으로부터 사상 처음으로 망명자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미국의 탈북자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왔는지 주목되고 있다. 1일 LA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따르면 4월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돼 INS 구치소에 구금됐던 탈북자 이철수(39·가명)씨가 지난 달 15일 석방과 동시에 INS로부터 망명 지위 허용 판결을 받았다. 함께 석방돼 16일 재심사를 앞두고 있는 이길남(40·가명)씨도 사실상 망명 승인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이민귀화규정 208항에 따른 망명 지위 허용 판결은 미 정부가 망명자 신분을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로 출신국의 환경 변화 등 특별한 사안이 발생하지 않는 한 유예기간인 1년 뒤 영주권 및 노동 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9년 동안 INS에 망명 신청을 낸 탈북자 30여명 중 망명자 신분 획득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까지 한 건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탈북자 관련 미 이민 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INS의 1차심사 통과자에 한해 연방 이민 법원이 망명 승인 결정을 내리는 기존 규정 대신 이씨의 경우 INS가 단독으로 최종 결정을 내려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또 이들이 1971년(이철수씨)과 1980년 북한을 떠나 공민증 등 탈북자 신분을 입증할 자료가 없는 데도 성장 환경 등 정황 증거만을 적용해 망명지위를 부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같은 변화는 탈북자 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내 및 국제 사회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국무부는 그동안 주중 외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을 냉정히 거부해 인권단체 등의 비난을 사 왔다. 미 의회는 6월 탈북자들의 망명 허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탈북자들의 미국행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중국을 통한 한국행 통로가 사실상 막힌 상태에서 탈북자 지원단체들이 새로운 기획망명의 대안을 찾고 있었던 데다 미 현행법상 망명 신청은 미국 국경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땅만 밟으면 망명이 허용될 것" 등의 지나친 낙관론은 시기상조이다. 그동안 중국 추방을 통한 탈북자 한국행에 대해 묵시적 동의로 일관해 온 북한이 공식 망명 승인에 대해서까지 눈을 감아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또 망명지위 부여가 INS 자체가 아닌 각 지역 INS 판사 개인의 고유 권한이라 이씨와 유사한 경우에 대해 또다시 망명 승인 판결이 날지도 미지수다. 일단은 11월 이민 법정의 최종 심사를 앞두고 있는 탈북자 김순희(38)씨의 판결 결과에 따라 이번 사례가 '1회성 이벤트'로 남을지, 제2, 제3의 이철수씨가 나올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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