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라든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은 가까운 사람에게 어처구니 없는 배신을 당했을 때 흔히 인용되는 속담이다. 로마의 실력자 시저가 가장 믿었던 부하 브루투스의 칼에 찔려 숨지면서 남긴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말도 의외의 배신에 치를 떠는 절절한 단말마다. 먼 나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복 중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내부의 적이 '공공의 적'보다 더 위험하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신용의 대명사'가 돼야 할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우리은행 지점의 말단 창구 여직원이 전산 단말기를 조작, 거액의 예금을 허위 입금시킨 뒤 18억여원을 챙기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현대증권의 한 여 대리는 고객에게 대출을 해준 것으로 위장해 1년 동안 무려 60억원을 빼돌리다 검찰에 적발돼 구속됐다. 최근 발생한 대형 금융 사고의 특징은 금융거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 90초 만에 250억여원의 허위 매수 주문을 내 500만주의 거래를 성사시킨 대우증권의 고객 계좌 도용 사건에도 증권사 직원들이 '어김없이' 개입돼 있다. 사건 용의자로 검거된 6명 중에는 현직 증권사 직원이 4명이나 된다. 한 직원은 수고비로 30억원을 받고 주가 조작을 도왔다고 한다. 이들의 범행 동기는 대부분 무절제한 사생활과 주식투자로 떠안게 된 빚을 갚기 위한 것이었다.
■ 금융사고의 1차적 원인은 물론 은행원들의 삐뚤어진 배금주의와 윤리의식 부재에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내부 통제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잇단 금융사고가 첨단 금융거래 관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허술한 통제시스템에서 비롯됐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에서 영업 중인 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671건이지만, 2∼3중의 교차 점검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41개)의 사고는 4∼5건에 불과하다. 우리 금융기관의 감시 및 통제시스템 어딘가에 결함이 있다는 얘기다. 시스템 재점검이 시급하다. 크로스 체크와 상호 감시 장치가 없는 곳에서는 항상 내부의 적이 배신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법이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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