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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 전국강타/끊기고… 뽑히고… 잠기고… 곳곳 초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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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 전국강타/끊기고… 뽑히고… 잠기고… 곳곳 초토화

입력
2002.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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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가 끊이지 않았던 8월의 마지막 태풍 '루사'는 결국 손 쓸 겨를도 없이 전국 곳곳을 초토화시켰다. '루사'가 31일과 1일 전국을 강타하면서 120여명이 목숨을 잃었거나 실종됐고, 강릉시와 동해시 김천 등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해 도시기능을 상실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특히 폭우와 함께 강풍을 동반한 루사는 전봇대를 엿가락처럼 부러뜨리며 서울 등 대도시는 물론 섬 지방에까지 정전사태를 몰고 와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특히 강릉, 김천 등은 최악의 수해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산사태로 인명 피해 커져

이번 재해의 특징은 유달리 산사태로 인한 피해가 많다는 점이다. '비의 달'이었던 8월 들어 장맛비가 계속돼 지반이 약화한 상황에서 또다시 단기간에 집중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1일 새벽 4시께에는 전북 무주군 금평리 마덕마을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 언덕밑 새하늘교회 관사를 덮쳐 목사 가족 등 4명이 매몰돼 숨지는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또 31일 오전 9시께 강원 강릉시 왕산면 국도35호선에서 산 자락이 무너져 내리면서 차량 10여대가 매몰돼 10명 이상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2차 산사태 우려로 구조작업마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30분께는 경남 함양군 마덕면 덕천리 내마마을에서도 산사태로 노성곤(31)씨가 숨지고 김순덕(60·여)씨 등 3명이 매몰되는 등 전국적으로 40명 이상이 산사태나 주택매몰로 사망·실종됐다.

산사태로 변을 당한 유가족들은 '자연의 대재앙'이 몰고 온 참극임을 인정하면서도 "당국이 8월 장마 후 취약지역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보수를 했더라면 이렇게 피해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울부짖고 있다.

▶전국이 순식간 물바다

강릉지역에 이틀동안 900㎜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비를 쏟아 부은 루사는 전국 대부분 지역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었다. 엄청난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물이 채 빠져나가지 못해 빚어진 결과였다. 상당수 주민들은 비가 멈춘 후 귀가했지만, 전국적으로 건물과 주택 1만7,000여채가 침수되거나 파손되면서 3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경북 김천 등 일부지역에서는 하천과 저수지가 범람하거나 주택가 침수가 발생,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경북 영덕군 묘곡저수지 범람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은 "당국이 태풍이 오기전 저수지 물을 빼놓았더라면 이처럼 피해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해 했다.

최종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고흥 등 전남지역 3,500여㏊ 등 전국적으로 농경지 1만여㏊가 물에 잠기고 수백㏊에서 벼가 쓰러졌다. 또 추석 대목에 맞춰 수확하려던 배, 사과 등 과실이 떨어져 나가고 수십만 마리의 닭과 돼지 등이 폐사, 시름에 빠진 농민들을 또다시 좌절케 했다.

▶강풍피해 속출, 통신두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새롭게 단장한 부산 공항로 등에서 1,400여그루의 가로수가 뿌리째 뽑혔으며, 전국적으로 수천그루 가로수가 맥없이 쓰러지고 도심 간판이 떨어져 행인 수십여명이 부상했다.

루사가 한반도를 관통한 8월 마지막 밤은 전국이 암흑속 공포에 떨어야 했다. 강풍으로 전선이 끊기거나 전국에서 762개의 전봇대가 넘어지고 변압기 170대가 고장나면서 사상 최악의 정전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일대를 포함해 31일 밤부터 1일 새벽까지 전국적으로 120만여가구가 정전이 됐으며 이 가운데 24만7,000여 가구는 이틀째 전기공급이 중단됐다. 또 이동통신 무선기지국 424곳이 불통돼 이동전화마저 끊기고 곳곳에서 통신두절 사태가 빚어져 유령도시를 방불케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 강릉 왜 피해컸나

순식간에 도시를 집어삼킨 강릉지역 집중호우는 태풍 '루사'와 한기대, 태백산맥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태풍의 뜨거운 공기가 대륙고기압의 찬공기와 부딪치며 강한 비구름대가 형성됐고, 이 것이 동풍을 타고 태백산맥을 넘으려다 저항을 받아 엄청난 비를 쏟아낸 것. 강릉지방엔 31일 하룻동안 870.5㎜가 내려 1904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록을 세웠다. 1981년 9월2일 장흥의 547.4㎜보다 323.6㎜가 많은 것이다.

루사의 영향을 받기 직전인 30일부터 강릉지방엔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된 고기압의 영향으로 1.5㎞ 상공에 찬공기가 형성돼 있었고 많은 습기를 머금은 북동풍이 불면서 비가 비치기 시작했다. 이 때만 해도 일강수량은 14㎜에 불과했다.

하지만 루사의 영향이 시작된 31일 오전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루사가 가져온 고온다습한 기류가 찬공기와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강릉상공의 대기를 흔들어 엄청난 비구름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태풍기류의 영향으로 강릉지역에 강한 동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비구름대를 태백산맥쪽으로 밀어 부쳤고 이 비구름대가 태백산맥과 충돌, 동쪽 사면에 엄청난 비를 뿌렸다. 이로 인해 강릉지역엔 31일 오전 6시부터 시간당 30∼40㎜이상의 비가 꾸준히 내려 이 지역 일년치 강수량(1,402㎜)의 62%가 쏟아졌고 대관령에도 713㎜가 내려 전국 일강수량 1,2위를 갈아치웠다.

반면 태백산맥 서면쪽에 위치한 춘천 원주 등에는 각각 36.5㎜, 85.5㎜의 상대적으로 적은 비가 내렸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라산과 지리산 등도 비슷한 원인으로 많은 비가 왔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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