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 한규환(韓圭煥·52) 사장의 방에 가면, 눈에 띄는 물건이 2개 있다. 하나는 일반 업무용 책상 오른 편에 있는 '입식(立式) 결재대'. 입식 부엌처럼 결재를 서서하기 위해 마련한 가로 세로 1m 남짓한 가슴 높이의 책상이다. 다른 하나는 업무용 책상에 놓여 있는 헤드세트다. 매일 아침 7시30분부터 1시간 가량 열리는 화상회의때 그는 이 헤드세트를 쓰고 컴퓨터 모니터 상단에 부착된 웹 카메라를 보며 회의를 진행한다.이 두 소품은 '조폭'을 연상시키는 짧은 머리와 엔지니어 특유의 딱딱한 스타일을 가진 그에 대한 첫 인상과 묘하게 어울려 행동하는 젊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대학 때부터 즐겨온 암벽 등반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소품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현대모비스에 입사, 1998년 기술연구소장을 맡기까지 줄곧 연구 파트에서 한 우물을 파온 전형적인 엔지니어다. 입사 후 자동차 기술개발에 매진해온 한 사장은 세계에서 4번째로 자기부상 열차를 개발했고, 경부고속철 국산화를 이끌면서 한국 철도차량 기술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그가 올 1월 입사 20년만에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사장에 발탁된 것은 이처럼 한번 정한 목표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뚝심과 열성 덕분이다.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를 표방한 그는 취임 직후 자동차에 무선 정보기술을 접합하는 '텔레매틱스' 사업에 대한 투자규모를 결정해야 하는 CEO의 고민에 부닥친다. 당시로는 수백억원의 돈이 들어가야하는 텔레매틱스 사업의 정의나 시장 규모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한 사장은 수많은 대안을 검토한 끝에 결국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미래 성장분야를 놓치지 않는 묘안을 찾았다. 이른바 '플랫폼'(기반이 되는 장치) 개념을 도입해 급속하게 발전할 텔레매틱스 분야에 대한 적응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에 따라 현대모비스는 '위험은 피하고, 탄력성은 높이는' 전자 플랫폼 개발을 위해 IBM과 손잡았다.
한 사장이 앞으로 역점을 두는 분야는 모듈(여러 부품을 한데 묶은 부품 세트) 사업과 선진부품 기술 확보다. 부품을 모듈화하면 예컨대 차체의 충격을 흡수하는 현가장치와 브레이크 등의 제동장치, 방향을 잡아주는 조향장치를 완성차 업체에서 개별적으로 조립할 때보다 원가는 약 30%, 무게는 20%, 부품수량은 35% 가까이 절감된다. 물론 품질향상과 생산 일정단축도 가능해진다. 한 사장은 "모듈 사업이 현대 모비스의 전략 분야"라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충격 강도에 따라 달리 팽창되는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 등 부품기술을 선진화하는 것도 현대모비스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아직까지 명실상부한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라고 하기 힘들다. 지난해 2조9,000여억원의 매출중 50% 이상이 자동차 애프터서비스(A/S)용 부품 유통사업에서 발생했고 순수 부품제조 매출은 6,500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예상 부품매출액은 작년의 2배를 넘는 1조7,000억원으로 잡는 등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를 위해 독일의 보쉬 등 세계 굴지의 자동차 부품업체 6곳과 기술제휴를 맺고 있다. 일부에서 기술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 사장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술협력은 기술문서 꾸러미를 받고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끝나는 기존 제휴방식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예를 들어 운전석 모듈 분야에서 제휴를 맺은 미국 텍스트론사의 경우, 경기 마북리의 현대모비스 연구소에 있는 50대의 컴퓨터가 텍스트론의 기술 데이터베이스(DB)에 마음대로 접속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으로서의 장점과 역할에 대해 그는 "자동차, 컨테이너, 철도차량 등 덩치 큰 물건을 만들어왔던 현대모비스를 정밀함과 차분함이 요구되는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로 변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을 아끼며 "전직원들의 이름을 하루속히 익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웃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 현대모비스는 어떤 회사
현대차, 기아차와 더불어 현대자동차 그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A/S용 부품 판매와 모듈 제조, 부품 수출 및 첨단 부품 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수출용 컨테이너, 갤로퍼 등 4륜구동 자동차, 고속철 등 철도차량, 플랜트 환경 사업 등을 해오던 현대정공(1977년 설립)에서 2000년 11월 지금 이름으로 바꾸며 전면적 사업구조 조정을 단행,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동차 사업은 현대차에, 철도차량 사업은 한국철도차량에 떼어주고 모태 사업이던 컨테이너 사업의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했다. 2005년에 세계 10대 자동차 부품 회사로 도약한다는 게 목표. 3,500명의 직원 중 연구직(400명)이 10%가 넘으며 연구개발(R&D) 투자는 매출액의 5% 수준이다.
지난해 2조9,647억원의 매출에 3,57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올해는 3조7,000억원의 매출에 4,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낼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는 운전석 모듈에서는 미국 텍스트론, 에어백 분야에서는 미국의 브리드, 최첨단 전자 제동장치인 ESP 분야에서는 독일의 보쉬와 기술제휴를 맺는 등 모두 6곳과 기술 협력을 체결했다. 경기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에 있는 카트로닉스 연구소와 모듈 연구소가 '성장 엔진'.
● 한규환 사장 누구
1950년 서울 출생
68년 서울고 졸업, 72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82년 서울대 기계설계 석사
1983년 현대그룹 입사
90년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기초연구부 이사대우, 94년 시스템연구부 상무
98년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장(전무), 2001년 A/T 사업본부 부사장
2002년 1월 현대모비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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