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 공이 이렇게 뜨겁게 한국 땅을 달굴 줄 몰랐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아직도 붉은 색을 보면 가슴이 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법하다. 무라카미 류(50·사진)의 2002년작 장편소설 '악마의 패스'(동쪽나라 발행)는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일본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붉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표지로 둘렸다는 것, 제목에 '악마'가 사용됐다는 것 등 몇 가지 단순한 이유로도 일단 눈길을 끈다.무라카미 류는 이탈리아로 축구 관전 여행을 다닐 만큼 열성적인 축구 팬이다.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선수 나카타 히데토시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악마의 패스'를 출간할 즈음에 '문체와 패스의 정밀도'라는 축구서적도 함께 펴냈다.
소설은 추리물에 가깝다. 작가인 야자키 겐스케는 친구인 축구선수 야하네 도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날아간다. 야하네 도지는 동료 축구선수들이 경기 직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 도핑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털어놓는다. 야하네의 소개로 만난 미모의 과학자 콜린느 마틴은 '안기온'이라는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쇼크 상태의 환자를 구하기 위해 개발된 안기온이 비유럽권 선수들에게 투여되고 있다는 것. 야하네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 야자키가 안기온에 관한 음모를 밝히려 한다.
내용은 대중적이지만, 소설 후반의 마지막 축구 경기장면이 놀랍도록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장면 하나하나를 길지 않은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묘사, 코 앞에서 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것 같다. 선수들의 긴박한 감정을 순간순간 포착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작가는 "축구선수라고 할 만한 소설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써나갔다"고 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읽다 보면 감탄이 나온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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