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집이 조화를 이루며 빚어내는 '둥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책. 저자는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등을 비버, 호박벌, 프레리 독 등 동물들이 지은 '천연 주택'과 나란히 포개놓으며 더 좋은 집을 짓기를 꿈꾸고 있다. 집을 짓는데 따르는 기하학, 인력, 공기 순환, 방어 등 여러 기능을 주제로 책을 엮었다.저자는 건축의 출발은 둥지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집과 동물의 집인 둥지를 가르는 것은 기하학적 구성이다. 저자는 가우디의 말을 따라 자연에는 어디에도 직선이 없다고 말하며 근대 건축을 비판한다. 현대인의 집은 격자에 인간의 생명이 짜맞춰져 있다. 그러나 둥지는 주문 주택이며, 생명의 고동과 보조를 같이 하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고전적 건축기하학의 논리와 거리가 먼 가우디의 '카사 밀라'라는 아파트는 외벽 면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요철을, 지붕은 꽈배기 모양의 흰 굴뚝을 놓아 도시 경관 속에 조화를 이루게 했다. 이 아파트는 둥지처럼 살아있는 존재이며 '부드럽고 푹신한 집'이라는 가우디적 건축관을 지상에 실현하고 있다.
유치원 건물 전체를 흙으로 덮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한 일본 오사카의 PL 유치원을 떠올리며, 저자는 서울의 백배 너비의 도시를 땅 속에 건설하는 프레리 독을 연상한다. 두더지와 비슷하게 생긴 이 동물은 여러 개의 출입구를 만들어 비상구를 확보하고, 통풍을 잘 되게 하며, 비가 올 경우 물이 들이치지 않게 하기 위해 지하 중앙 통로에서 수직으로 올라가는 구멍을 뚫는다. 출입구 주위의 둔덕들 높이를 달리 해 공기를 자연스레 조절하는 이들의 둥지에 비해 인간의 건물은 통풍을 위해 기계를 가동시키고 에너지를 낭비한다.
이 책의 현대 건축 비판은 '바벨의 집'으로 요약된다. 건축재료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공되어 있으며, 높이는 인력의 지배를 벗어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하늘로 치솟아있다. 저자는 이처럼 공격적이고 오만한 현대의 거대 건축물이 바벨탑 같이 언젠가는 파국을 맞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하이쿠가 인용되는가 하면 소설이 인용되고 미술 작품과 문명 비판이 녹아들어가 있다. '모태의 내부와 같이 인간을 감싸는 집'을 모색하는 이 책엔 둥지를 꿈꾸는 현대 건축물들의 사진도 여럿 실려있다. 저자는 1937년생으로 무사시노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다.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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