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이 혼자 가는 개는 가슴을 조인다. 고양이야 어디에다 내놓아도 잘 살 것 같은 동물이지만, 개는 사람 없인 제 한 몸 돌볼 수 있을까 싶어 안쓰럽다. 그만큼 사람에게 기대 사는 동물이다.소설가이자 바둑 평론가인 이인환(50·사진)씨가 산문집 '강아지, 우리 강아지'(그림같은세상 발행)를 펴냈다. 소설가 성석제씨는 일찍이 이씨를 두고 "그의 이바구는 너무나 구수하고 재미있다. 그와의 대화가 내 소설 몇 편을 낳았다"고 묘사했다. 재담가인 성석제씨를 즐겁게 했다니, 입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말하듯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별로 꾸미거나 다듬지도 않은 문장이 배를 잡게 만든다.
이 사람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면,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가 어찌나 딱해 보이던지 우리 안으로 강아지를 들이밀었을 정도다. 호랑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호랑이는 본 척 만 척이었지만, 강아지는 호랑이의 살기에 그만 죽어버렸다. 욱하는 심정에 달려가 호랑이 머리통을 갈기려다가 꼬리를 붙잡았다. 호랑이는 꼬리를 뿌리쳤고 이씨는 털썩 주저앉았다. 인근 파출소로 연행됐다가 나오는 이씨의 뒤에서 경관들이 키득거렸다. "호랑이 꼬리를 잡은 사나이야. 건드리지마." 수십년 전 일을 떠올려 적으면서 맺은 이씨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강아지 생각을 하면, 몹쓸 짓을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그때 그런 흥분 혹은 분노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 이야기인데, 우습고 황당하고 눈물이 난다. 개들은 어쩌자고 그렇게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지. 잘난 척하는 동네 친구놈 강아지와 맞붙은 이씨네 집 돌쇠는 "물엇!"이라는 주인의 한 마디에 상대를 꽉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잡종개 토토는 제 몸의 10배가 되는 황소를 건드려 이웃집 고추밭을 망쳐놓더니만, 제가 달리기 선수인 줄 아는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쫓다가 운전자를 개울에 빠뜨렸다. 미운 짓만 골라 하던 이 녀석도 그새 정이 들었는지 쥐약을 먹고 죽었을 땐 온 가족이 눈물을 쏟았다. 이씨의 딸이 유난히 예뻐했던 바둑이는 겨울날 아궁이에서 비명횡사했다. 추위를 피하겠다고 아궁이에 들어갔다가 이씨가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바람에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다"고 한다. 무슨 유익한 교훈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실망하지 말라는 말부터 한다. 도움될 만한 게 하나 있긴 하다면서 들려주는 얘기가 코끝이 찡하다. 뭐냐 하면,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개를 보면 겁내지 말고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시라. 사실 개는 엄청 외로운 존재다. 사람이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게 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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