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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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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입력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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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객실의 호텔이 있다. 호텔은 만원이 되었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한 사람 더 왔다. 호텔 주인은 1호실 손님을 2호실로, 2호실 손님을 3호실로 순차적으로 옮겼다. 이렇게 무한히 계속하자, 그 호텔의 1호실은 항상 비어 새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유한한 듯하면서도 무한한 우리의 삶에서 호텔 1호실과 같은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 1호실에선 가끔 소설도 읽는다.우연히 만난 소설이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이나 충격을 주는 경우가 있다. 동네 변두리 서점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며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가 이 책을 권한 것이 3년 전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덴마크 작가 페터 회가 무용수, 배우, 선원, 검술가, 등반가 등을 거친 끝에 쓴 소설이다. 진지한 이야기는 내 머리를 사로잡았고, 주인공 스밀라는 내 가슴을 매료시켰다.

스밀라는 서른 일곱의 여자다. 코펜하겐의 눈쌓인 지붕 위의 미끄러진 흔적을 보고 관심을 가진다. 떨어져 죽은 아이의 사망 사건을 추적하는 장편 추리극은, 단지 소설의 형식일 뿐이다. "사람들은 죽는다. 어떻게 죽느냐 또는 왜 죽느냐를 궁금해해서 무엇을 얻겠는가?" 스밀라는 '문명비판'이든 '인간의 존엄'이든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린랜드로 떠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가? 세부적인 것은 그렇지만, 큰 것들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삶은 거짓으로 얽혀 있다. 그런데 세계는 진실도 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스밀라는 사랑보다 눈과 얼음을 더 높게 친다. 인간에게 애정을 가지는 것보다 수학에 관심을 갖는 게 더 편하다는 식의 냉철함으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깨달음을 준다. 인간은 진실에 대해 현상하지 않은 필름처럼 민감하게 반응해도, 진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눈은 변덕의 상징이면서 진리나 빛의 상징이기도 하다.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담고 있다면, 그것이 소설이라 해도 소홀히 대접할 수 없는 무게를 느낀다. 혼자 생각할 수만 없어, 휴가를 떠나는 참여연대 간사들을 보면 한 권씩 손에 쥐어주고 싶어진다. 이제 그런 충동은 습관이 되었고, 그때마다 같은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향해 일어선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자주 나를 움직인다.

차병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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