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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상반된 평가받는 獨평론가 라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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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상반된 평가받는 獨평론가 라니츠키

입력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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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문학사중주'가 없는 2002년 독일 여름은 우울하다. '문학사중주'는 독일문학비평의 교황이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불리는 폴란드 유태인 게토 출신의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 라니츠키가 창안, 직접 사회를 맡아 정열을 토했던 독일 제2방송의 문학토론 프로그램이다.지난해 막을 내릴 때까지 13년간 독일어로 출간된 361권의 신간을 놓고 토론해왔다. 일단 토론이 시작되면 라니츠키의 논조는 잔인하고 독단적인데다, 절정에 이르면 그는 거의 포효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독일인들이 그의 도그마를 수락하고 그를 사랑했던 것은 82세 남자 안에서 출렁이는 깊은 지식의 우물과 문학에 대한 순교적 사랑 때문이었다. 방송이 막을 내렸을 때 한 유명 출판인은 "책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곧 길을 묻는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토론이 적어질수록 세상은 재앙과 가까워진다"는 섬뜩한 별사(別辭)를 보낼 정도였다.

그것이 예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여름 독일의 빼어난 여신 엘베강이 범람하면서 중부지방을 습격, 폐허로 만들었을 때 독일 언론은 그것을 '노아의 홍수' '최후의 심판' 등으로 표현했다. 이 세기적 홍수는 말하자면 이 유복한 사회에 다시 창세기적 질문을 들이댄 것이다.

그 라니츠키가 괴테문화상을 수상했다. 프랑크푸르트시가 3년마다 괴테탄생일에 수여하는 소중한 상이다. 라니츠키는 두 달 전 반유대주의 소설 논쟁을 일으키며 주어캄프 출판사가 내놓은 마르틴 발저의 소설 '어느 평론가의 죽음'에서 추하고 악마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잠정적 주인공이다. 소설은 출판 전후 "독일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새로운 먹이를 얻었다"고 경고할 정도로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독일의 숙명적 내상(內傷)인 인종주의에 황산을 들어부었다.

최근 권위지 '디 차이트'는 인상적인 소식 한가지를 전하고 있다. 폴란드에서 공개한 비밀문서 열람 결과에 의하면 라니츠키는 1940년대 후반 폴란드 정보부 MBP 요원으로서 영국에 파견돼 비밀요원으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엔 폴란드 임시정부가 수립돼 있었고, 그는 소련 K'B의 지부 성격인 MBP의 지령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을 염탐하는 첩자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다. 당시 그의 암호명은 '앨빈'이었다. 히틀러 제3제국이 멸망한지 60년 후, 한 유태인 지식인 라니츠키가 지금은 조국이 된 가해자의 나라 독일에서 한편으로는 발저에 의해 공격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괴테문화상 수상자로서 포옹되는 두개의 극단적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의미있다.

강유일 소설가 독일라이프치히 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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