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결재 전에 (언론에)보도됐다고 실무자를 쫓아냈대요. 이젠 겁나서 소신껏 일하기는 어렵게 됐어요."각종 현안으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부 과천청사의 보건복지부. 29일에는 사무실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전날 '술 5% 부담금' 추진 실무를 맡았던 정신보건과장이 산하기관으로 전격 전보된 데 따른 연쇄반응이었다.
전후사정은 이렇다. 26일 오전 일부 출입기자들이 '술 부담금' 추진사실을 취재해 냈고, 다음날 대다수 조간신문에는 이 기사가 비중있게 실렸다. 이 사안은 전임 장관시절부터 논의돼 왔고 공청회까지 거쳤다는 설명이었다. 복지부의 의중이 실려있고, 여건만 허락된다면 시행하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복지부의 공식 해명은 예상을 빗나갔다. "실무자의 아이디어 단계이며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골자. 그로부터 하루 뒤 "장관이 모르는 사안이 언론에 보도됐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책임소재 조차 명확치 않은 담당과장이 산하기관으로 쫓겨났다.
이를 지켜 본 기자는 '복지부 식 마녀사냥'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 표적은 담당 과장 뿐이 아니다. 출입기자들도 마녀사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관이 잘 모르는 사안을 보도하면 담당자를 쫓아낸다"는 룰을 기자들도 무시할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을 기피하는 공직자들의 속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책이 결정되기 전에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논란이 일고 정책으로 성안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정책이 언론과 여론의 검증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시행되는 상황을.
"기존의 행정조직을 전면 혁신하지 않고는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없다." 이 시점에 경질로비설속에 퇴진했던 이태복 전 복지부장관의 자서전 구절이 뇌리를 스치는 것은 왜 일까.
정진황 사회부 기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