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총리 임명동의안의 부결 사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후임 총리 지명을 늦추며 총리 부재의 책임을 한나라당에 지우는 명분 논쟁이나 정치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일부 소장파 실무자들은 "당분간 후임 총리를 지명하지 말고 버티자"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청와대 핵심부의 기류는 감정적 대응의 자제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수 의석의 한나라당과 전선을 형성, 일전을 불사하기에는 힘이 부친 데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이 미비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청와대는 가급적 빨리 후임 총리 인선을 매듭짓고 국정 공백의 최소화에 전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현실적 한계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국민에 보이겠다는 일종의 차별화 전략을 택한 셈이다. 박선숙(朴仙淑) 대변인이 29일 브리핑에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후임 총리 인선은 가능한 한 오래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데서 이런 흐름이 읽혀진다.
실제로 청와대는 30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국정 전념을 다짐하고 정책 현안들을 논의한다. 또한 총리가 참석하기로 돼있던 남아공의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에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장관을 수석대표로, 김명자(金明子) 환경부장관을 교체수석대표로 참석토록 했다. 9월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도 예정대로 김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초점인 후임 총리 인선은 내주 중에 매듭짓는다는 것이 청와대의 생각이다. 두 차례의 인선 과정에서 자료가 충분히 축적돼 있어 실무적 준비에는 그다지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문제는 '대통령 보다 총리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혹독한 청문회를 통과할만한 총리 후보감들이 있느냐 이다.
한 관계자는 "흠 없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면서 "우선 순위를 임기 말 국정을 중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끌 역량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의 잣대로 대선 후보들을 재단하면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통 큰 정치를 보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적임자가 있다 해도 총리직 제의를 수락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장상(張裳), 장대환(張大煥) 전 총리 서리들이 청문회에서 수모를 당하는 장면이 보여졌기 때문에 총리직을 고사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인선을 빨리 매듭짓고 싶어도 매듭지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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