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지옥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졌지만 역사 속에서도 시험은 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1,000년 넘게 관리 선발의 등용문이었던 중국의 과거(科擧)는 치열한 경쟁 그 자체였다. 과거에 급제하면 오늘날 대학 합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날이 보장되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새 입시안 개선된 점 없어
중국 송(宋)대에 독재군주제가 확립되면서 과거제도는 개방의 원칙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선발과정에서도 나름대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하였다. 예를 들면 채점자가 수험자의 이름을 보지 못하도록 이름 위에 종이를 붙이는 호명(糊名)이 있었고, 필적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답안지를 다시 베껴서 시험관이 채점하도록 하는 등록(謄錄)이라는 것도 있었다. 명(明)대에 가면 커닝을 방지하기 위해 시험장을 칸막이 형태의 독방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커닝용 소책자는 물론 과거의 기본 텍스트인 사서오경과 그 주석 70만자를 속옷 안팎에 빽빽이 써서 오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 냈다. 과거제도는 결국 근대화를 방해하는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청(淸)대 말기에 폐지되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떠한 형태로든 경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녀를 기르는 교육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그 경쟁이 얼마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또 기초단계인 교육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
자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인적자원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이 인재 양성에 큰 몫을 담당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제도는 그 열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고교평준화를 비롯해 대학입시 방법에 이르기까지 교육정책의 많은 부분이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엊그제 발표된 2005학년도 대학입시안도 너무 복잡해 입시담당 교사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겉으로는 입시 과목 수가 줄은 듯 하나 실제로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반응이다. 개선되는 점이 없다면 바꿀 이유가 없지 않는가?
이처럼 매년 달라지는 입시제도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이중삼중으로 부담을 줄 뿐이다. 최근 발표된 2005학년도 대학입시안을 보면 수험준비도 대학별로 따로 해야 할 판이다. 대학마다 다른 선발제도는 실력보다 그 정보와 전략에 능통한 수험생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본인의 실력뿐 아니라 부모의 점수―입시정보와 학원정보를 잘 알고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능력―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교육현장에도 문제가 많다. 학생들은 여전히 공부에 짓눌려 있는데 일선 고교나 대학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서울대학에서도 기초과목의 수학능력이 기준에 못 미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교육열 뒷받침할 제도 필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교실 붕괴 현상이다. 그 원인은 고교평준화로 인해 편차가 심한 집단을 같은 교실에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수준이 낮아서 들을 필요가 없고, 못하는 학생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수업에만 충실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가 있다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래서 밤에는 학원으로 가거나 과외를 받지 않을 수 없고, 낮에는 학교에서 잠을 자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과외를 없애려면 대학은 물론 취업시험까지 컴퓨터 배정을 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공교육만으로 인성교육과 학업성취가 가능케 해야 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입시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 논리만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입시병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박지훈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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